20년 전쯤이다. 한국영화 리얼리즘의 정수라는, 유현목(1925~2009) 감독의 '오발탄'(1961)을 처음 접했다. "세계에서 하나 밖에 없는 프린트"라고 관계자는 말했다. 한국전쟁의 그늘이 짙게 드리운 당대의 어둠을 재연한 이 영화는 시종 영어 자막을 밑에 깔고 있었다. "국내 프린트는 다 유실되고 샌프란시스코영화제에 출품됐던 프린트를 겨우 구해 그런 것"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4ㆍ19가 불러낸 민주화 훈풍을 타고 개봉됐다가 5ㆍ16이라는 된서리를 맞았던 '오발탄'의 기구한 운명을 새삼 곱씹게 하는 사연이었다.
지난 25일 밤 EBS가 방송한 유 감독의 또 다른 대표작 '순교자'(1965)도 가난하고 무지했던 시절의 상징처럼 영어 자막을 끼고 있었다.
어디 '오발탄'과 '순교자'뿐일까. 20세기 중반 만들어진 한국영화는 극장에서 상영되면 곧 폐기되는 소모품에 불과했다. 많은 영화들이 관리 소홀과 필름 재활용으로 사라졌다. 아마 한국처럼 유실된 옛 영화를 찾아 뒤늦게 세계의 수장고를 뒤지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자막에 의한 손상은 그나마 양반에 속하지 않을까. 최근 한국영상자료원이 미국에서 발굴해 복원한 김기영(1919~1998) 감독의 데뷔작 '주검의 상자'(1955)는 후천적 무성영화다. 엄연히 유성영화로 만들어졌지만 필름 원본만 찾고 사운드는 발견하지 못해 반쪽 복원만 이뤄지게 됐다. '하녀'(1960)와 '충녀'(1972) 등으로 기묘한 자신만의 영상 세계를 구축했던 김 감독의 초기 스타일을 어렴풋이 가늠할 수 있다는데 만족해야 할듯하다.
안타까운 마음을 넘어 엽기적인 경우도 있다. 지난 19일 방송(EBS)된 김기덕('빈 집' 등을 만든 그 분과는 동명이인) 감독의 '대괴수 용가리'(1967)를 보며 깜짝 놀랐다. 서울 도심을 휘젓는 괴수의 몸짓에 서울시청이 무너져 내리는 장면 등 때문은 아니었다. 괴수가 입으로 불을 뿜을 때 호스가 보이는 조악한 특수효과도 눈에 그리 거슬리지 않았다. 말끔하고 날렵한 얼굴의 젊은 이순재와 60년대를 풍미했던 여배우 남정임 등 등장인물의 입에서 영어가 흘러나오는 걸 보고 뜨악했다. 화면 아래 쪽엔 한글자막이 자리잡고 있었다. 영어 더빙판이었던 것이다. 1960년대 만들어진 충무로 괴수영화를 보며 느껴야 할 자부심과 호기심을 대신해 씁쓸함이 남았다.
한국영화계의 오랜 숙원 중 하나가 나운규(1902~1937) 감독의 반일영화 '아리랑'(1926)의 프린트를 찾는 것이라 한다. 많은 영화인들과 영화 팬들이 꼭 찾아내 보고 싶은 영화로 이만희 감독의 '만추'(1966)를 꼽는다. 두 영화의 실재를 만나게 된다면 기쁘기도 하겠지만 또 어떤 기괴한 모습일지 두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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