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회사에서 여러 개의 노조설립이 가능한 복수노조 시대가 다음달 1일 시작된다. 복수노조제도는 1997년 3월 노조법을 개정하며 처음으로 허용됐으나 4차례의 유예 끝에 2010년 1월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시행이 가능해졌다. 복수노조제도는 수십년간'1사 1노조제'를 기반으로 노사관계를 구축해온 노동계와 재계 모두에게 낯선 경험이다. 이 제도의 시행으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양분해 온 노동계에 어떤 지각변동이 일어날지, 삼성과 포스코 등 오랫동안 무노조 경영을 해온 기업에 노조가 생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향후 1년 내에 복수노조가 생길 사업장은 이중 7~14% 정도로 예상된다. 2009년 현재 전체 노조가 4,689개인데 1년 내에 350~650개의 노조가 새로 설립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존 노조와 다른 성향을 가진 세력이 이탈해 새 노조를 만드는 움직임이 벌써부터 가시화하고 있다. 1년간 분규를 겪었던 구미의 전자부품업체 KEC에서는 민주노총에 소속된 기존노조에서 이탈한 조합원들이 새 노조설립을 추진하고 있고, 민주노총 소속 한국남부발전에서도 일부 조합원들이 온건성향 노조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반대로 2009년 민주노총을 탈퇴한 KT에서는 과거 민주노총 소속 지휘부 등이 새 노조 결성을 위해 세를 규합하고 있다.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에서, 단일 직군보다는 여러 직군이 혼재된 기업에서 신규노조가 출현할 가능성이 높다. 기존 노조의 주축인 생산직보다 연구ㆍ관리직의 숫자가 크게 늘어난 LG전자 등에서도 복수노조 출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무노조 경영을 해온 삼성의 노조설립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노동계에서는 최근 작업장 백혈병이 산재로 인정된 삼성전자나 삼성에버랜드, 삼성생명 등에서 4~6개월 안에 노조가 출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면 현대차, 현대ㆍ기아차 등 거대노조는 여러 계파가 경쟁하고 있지만 50억~100억원으로 추산되는 조합비 등 기득권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당장 새 노조가 출범할 가능성이 불투명하다는 분석이다.
노조설립에 제약은 풀렸지만 현행 복수노조제는 노조간 선명성 경쟁으로 인한 교섭비용 증가 등을 막기 위해 '교섭창구 단일화제도'를 강제하고 있다. 노동계는 이 제도가 소수노조의 권리를 침해하고 노노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양대 노총은 4월 교섭창구단일화 폐지를 골자로 한 개정 노조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 제도는 과반노조에 대표권을 주는 것을 원칙으로 과반노조가 없을 경우 노조들이 합의해 공동교섭대표단을 꾸리도록 했는데 이 과정에서 노노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한 전체 조합원 10% 이하인 노조는 공동교섭대표단 참여를 배제하고 있어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제한한다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반면 고용부는 사측이 동의하면 각 노조와의 개별교섭도 가능하고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창구단일화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며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교섭창구 단일화가 원칙이지만 조종사노조와 일반노조가 분리돼 있는 항공사처럼 노동조건이 크게 다르거나 교섭관행이 다를 경우 교섭단위를 분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노조나 사용자가 교섭단위 분리를 신청하면 노동위원회가 이를 결정하도록 돼 있는데 만일 강성 노조가 과반을 차지할 경우 사측이 이들이 교섭대표가 되는 것을 막고 온건노조를 지원하기 위해 이 제도를 악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조끼리 교섭단위 분리를 합의해도 이를 결정할 전권을 노동위원회가 갖는 것은 노사관계의 자율성을 해치고 정부가 개입할 여지를 과다하게 준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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