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는 말 그대로'의혹 덩어리'였다. 한화가 대생을 인수하는 과정 전반에 걸쳐 특혜 시비가 불거졌고, 권력형 로비의 결과라는 의혹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의혹은 흐지부지됐고, 결국 3조5,500억원 규모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생은 8,236억원이라는 헐값에 한화 품에 안겼다.
인수 부적격에서 적격으로 둔갑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흔들렸던 대생은 1999년 매각 수순을 밟았다. 한화는 그해 5월과 6월 2ㆍ3차 공개입찰에 뛰어들었으나, 98년 퇴출된 한화종금 및 충청은행 대주주로서의 부실책임을 이유로 입찰 자격이 박탈됐다. 공개입찰이 계속 유찰되자 당시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는 7월 대생을 부실 금융기관으로 지정했으며, 예금보험공사는 10월과 11월 각각 500억원과 2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대생 인수에 손발이 묶였던 한화는 이후 금융당국의 지원사격에 힘입어 인수 적격자로 변모했다. 금감위는 99년 말'최근 5년간 부실금융기관의 최대주주 등 부실경영에 관련된 사실이 있는 경우 금융기관 설립을 허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설립인허가 지침을 개정, 일정 수준의 경제적 책임을 부담한 경우 이 규정의 적용을 배제토록 했다. 한화는 한화종금에 투입된 공적자금 1조4,794억원 중 1,300억원을 매입, 한화종금 부실책임에서 벗어났다.
또 한화증권의 선물업 진출 인가 과정에서 불거진 충청은행 부실 책임 문제는 2001년 4월 금감위 및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에서 '외환위기 전후로 퇴출된 5개 은행(충청, 동화, 동남, 대동, 경기은행)은 대주주의 경영참여 및 부실책임이 없는 것으로 포괄의제 한다'는 결론을 내려주면서 면제됐다.
일사천리 매각 재추진
공적자금관리위원회(공자위)가 대생 매각을 재추진키로 의결한 것은 2001년 3월. 한화의 인수 부적격 요인이 모두 해소된 뒤였다. 그 후로는 일사천리였다. 그 해 8월 '국내외 보험사 또는 보험사가 포함된 컨소시엄에 지분 51% 이상 매각'이라는 방안을 세웠고, 9월에는 대생에 추가로 1조5,000억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그리고 한 달 뒤 한화컨소시엄은 대생 인수의향서를 단독 접수하고, 이듬해 6월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이 과정에서도 특혜 의혹이 일었다. 보험업법의 '주요출자자요건'(부채비율 200% 미만)에 한화컨소시엄이 저촉됐기 때문이다. 당시 한화그룹의 부채비율은 232.2%였고, 2002년 3월 ㈜한화 등 3개사가 8,0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한 사실이 적발돼 증선위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이 때문에 공자위 매각심사소위가 '한화컨소시엄 인수 자격 부적격'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지만, 공자위 사무국은 '문제는 있지만 공자위가 판단할 사항'이라고 수정했다. 공자위는 9월 한화컨소시엄에 대생 매각을 최종 의결했으며, 그해 12월 21일 예보는 대생 지분 51%를 8,236억원에 한화에 매각했다.
용두사미 된 의혹 폭로
2002년 9월 정형근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화그룹이 대생 인수를 위해 정관계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을 폭로했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김연배 전 한화증권 부회장이 기소됐다. 그러나 결과는 '용두사미'. 김 회장은 3,000만원 벌금형만 받았고, 김 전 부회장에겐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만 인정됐다. 한화가 컨소시엄을 이룬 맥쿼리생명과 이면계약을 체결해서 입찰을 방해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2006년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한화그룹의 대생 인수 과정에서 불거진 모든 특혜ㆍ로비 의혹은 흐지부지 덮어졌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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