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무원이 최근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의 아리랑과 랴오닝(遼寧)성의 춘향가 심청가 등 판소리를 제3차 국가 무형문화유산에 등재했다. 한국 정부는 즉각 대응해 내년에 우리 민족 전래민요인 아리랑의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전격 추진키로 했다.
중국 문화유산 등재가 부른 논란
아리랑 다툼을 보는 한국의 대체적 시각은 한국사 왜곡을 염두에 둔 중국 동북공정(東北工程)의 확대이므로 화나고 억울하다는 것이다. 한국이 2005년 강릉단오제를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자 뒤늦게 2009년 후베이(湖北)성 단오제를 무형문화유산에 올린 중국이 문화적 보복을 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하지만 당사자인 재중동포의 입장은 천양지차다. 중국 동북 3성 가운데 랴오닝성 재중동포 밀집지인 티에링(鐵嶺)시는 한국과 산수가 비슷하다. 재중동포 판소리 전승자 김례호(金禮浩ㆍ74)씨는 오래 전 이곳으로 이주한 선대 어르신들한테서 판소리를 전수 받았다. 전체 열두 마당 가운데 춘향가 심청가 등 다섯 마당을 지금도 멋들어지게 완창해 티에링시의 판소리 인간문화재로 통한다.
그러나 그도 나머지 일곱 마당의 전승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시간이 지나면서 잊히는 점이 안타깝다. 그런 김씨이기에 중국 정부가 티에링시의 판소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보존할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과 관심을 보여주길 애타게 바랐다. 재중동포 젊은이들이 한국가요에 빠진 채 판소리에 등을 돌려, 대대손손 물려주기 힘들다는 위기감에 잠을 설칠 정도였다. 선대의 전통 문화를 계승하고 싶은 마음은 심청이가 인당수로 몸을 던질 때와 같이 절실하다.
이 같은 김씨의 목소리가 티에링시 정부와 랴오닝성 정부를 거쳐 베이징(北京) 중앙정부에까지 전달됐다. 티에링시 조선족 판소리가 심사를 거쳐 중국 국무원 무형문화재로 등재된 배경이다. 김씨는 최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우리가 중국에서 조선족으로 살아남으려면 먼저 우리 문화를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며 "중국에 조선족이라는 존재가 없다면 중국이 아리랑과 판소리의 보호 등록을 하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옌볜 아리랑과 티에링 조선족 판소리 등의 중국 무형문화재 등재를 동북공정의 확대로 해석하는 한국 문화계의 일방적 시각에는 일침을 가했다. "중국 정부가 조선족 아리랑 등을 무형문화재로 등록하고 보존하지 않으면 조선족 문화는 소실될 수밖에 없다. 아리랑 같은 것이 전승되지 않고 사라지면 중국의 조선족을 정말 조선족이라 할 수 있겠는가. 한민족이란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면서 한국의 민족주의자, 국수주의자들이 중국 조선족 문화 보존에 관심 혹은 지원을 보인 적이 있는가."
내년 한중 수교 20주년을 앞두고 아리랑 논쟁이 양국간 감정대립으로 확산될 소지가 다분한데, 중국 정부는 공식 입장을 아직 내놓지 않고 있다. 한국 보도에 항상 앞장서는 환추시보(環球時報) 등의 언론도 한국의 보도만 번역해 소개할 뿐 논평이나 반박기사 등은 내놓지 않고 있다. 그만큼 사안이 민감하기 때문이다. 다만 왕이 등 인터넷 매체들에서 일부 네티즌의 반응을 접할 수 있다. 그들은 "한국이 강릉단오제를 유네스코에 먼저 등재한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며 "중국의 문화보복이 통쾌하다"는 댓글을 쏟아냈다.
중국의 우리 전통문화에 관심을
그러나 그럴 수록 우리 정부는 냉정하고 치밀한 전략으로 이 사안을 풀어나가야 한다. 특히 중국 동포를 인정하고 그들의 문화 전통 보존 방식에 세심한 관심을 보여야 한다. 경기에 경기아리랑이, 강원에 정선아리랑이 있듯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에도 옌볜아리랑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를 끌어안는 '통 큰' 문화주의 시각이 필요하다.
장학만 베이징특파원 loca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