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한 업체가 공사를 따내는 최저가낙찰제. 2001년 재도입된 이후 단계적으로 적용 범위가 확대되고 있는 최저가낙찰제가 현행 300억원 이상 공사에서 내년부터 100억원 이상으로 확대 적용될 예정인 가운데 정부와 건설업계가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확대적용이 불가하다는 업계와 확대 적용을 해야 한다는 정부 입장이 팽팽하게 맞선 상태다.
당장 업계는 "업체간 과당경쟁과 덤핑 입찰로 인한 적자와 부실시공 등 건설산업 전반에 걸쳐 부작용이 커질 수밖에 없는 만큼 확대 계획을 철회하라"고 주장한다. 더불어 "원도급 업체의 저가수주는 하도급 업체의 경영악화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만큼 동반성장을 강조해온 정부 기조와도 어울리지 않는다"며 최저가낙찰제 폐지를 위한 함께 서명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이에 반해 정부와 시민단체측은 "최저가낙찰제는 건설업계의 공사비 부풀리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공공공사에 대한 국민의 혈세 낭비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인 만큼 적용 대상을 늘리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더 나아가 "최저가낙찰제 철폐를 요구하는 건설업계 논리는 시공품질과 하도급 업체와의 동반 부실을 구실로 국민과 시장을 호도하는 협박성 주장"이라며 제도 시행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과연 최저가낙찰제는 주택경기 침체와 공공공사 발주 감소로 그렇잖아도 어려운 건설업계의 숨통을 조일 독약인지, 아니면 국민의 혈세가 새는 것을 막는 약이 될지 찬반 양측의 주장을 들어봤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 확대 시행 찬성"경쟁으로 공공공사 혈세 낭비 막야야"
"최저가낙찰제 현장이 건설재해를 부추긴다는 이익단체 주장은 건설노동자들의 죽음마저도 자신들의 이익 주장으로 동원한 의도적인 왜곡이다"
건설업체들의 경영난이 연일 화두가 되고 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미래 불확실성에 대해 제대로 대비하지 않았고, 시공업체로서의 경쟁력을 확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돌이켜보니 우리는 10년 전 뉴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하면서 건설업 경쟁력 강화를 외쳤지만, 건설업체는 여전히 경기불황을 거론하면서 그 간극을 혈세로 메워달라는'구걸' 행위를 매우 당당히 하고 있다. 10년 동안 무엇을 준비했고, 분양가 폭리 비난을 무릅쓰고 챙겨간 막대한 분양이득금을 어디에 썼는지에 대한 전방위적 사정이 필요하다.
공공공사의 유일한 가격경쟁 방식인 최저가낙찰제는, 10년 전 건설업 경쟁력 강화의 한 방편으로 도입됐고 2001년부터 단계별로 확대하기로 약속됐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어도 확대 약속은 번번이 유보돼 혈세로 건설업체를 먹여 살리는 고약한 버릇이 고쳐지지 않았고, 현 정부 들어선 단 한 번도 확대 약속이 이행되지 않았다. 내년 1월에야 집권 초기에 유보했던 최저가낙찰제 확대 약속이 시행되는 것이다.
대다수 서민들은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직접 시공을 하지 않는 원청 건설업체들은 태생적으로 최저가낙찰제가 적용돼 온 하도급업체와 달리 자신들은 국민혈세로 이익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협박성 주장까지 서슴지 않는다. 대표적인 주장이 하청업체와의 동반부실과 부실공사 주장이었고, 최근에는 건설재해마저 최저가낙찰제 제도 폄하에 악용하고 있다.
먼저 하청업체와의 동반부실 주장은 애초부터 논리가 맞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하청업체는 철저하게 가장 낮은 가격으로 입찰한 업체로 선정돼 왔다. 이런 시장경제적 원칙은 원청업체의 최저가낙찰제 도입 여부와 아무 상관이 없었다. 세금으로 원청업체에게 넉넉히 공사비를 쥐어줘도 하청업체는 지난 수십년간 그래왔던 것처럼 여전히 입찰가격이 가장 낮아야만 수주를 할 수 있고 이마저도 온갖 불공정 조건들로 옭아매어져 왔다. 일부에서는 낙수효과(trickle down)를 이야기하지만 자본의 냉철함을 망각한 매우 순진한 생각일 따름이다.
다음으로 부실공사 논리를 이용한 국민 협박성 주장이다. 턴키나 최저가낙찰제와 같은 발주방식은 공사수행 과정에서의 품질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이를 잘 알면서도 발주방식과 부실공사를 연계하는 것은 대국민 협박이나 다름없다. 만약 업계의 주장이 맞다면 태생적으로 엄격한 최저가방식을 적용받아 온 하청업체가 수행한 모든 공사는 부실덩어리였음을 필히 해명해야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해명이 불가능해지자 부실공사 주장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개별 발주기관은 부실공사가 발생한 게 최저가낙찰제 현장이기 때문은 아니란 점을 확인해주고 있다.
끝으로 최근 최저가낙찰제가 건설재해의 주범인양 의도적으로 왜곡한 보고서가 한 이익단체 연구원에서 나왔다. 그런데 건설업주 이익단체인 대한건설협회가 올 1월 발행한 '2009년도 건설업 민간건설백서'를 보면 현행 최저가낙찰제가 적용되지 않는 300억원 미만 공사에서의 산재 발생비율은 88%나 됐다. 산재 은폐를 할 수 없는 사망자 발생비율 또한 71%로 매우 높았다. 최저가낙찰제 현장이 건설재해를 부추긴다는 이익단체 주장은 건설노동자들의 죽음마저도 자신들의 이익 주장으로 동원한 의도적인 왜곡이다. 재해 유형을 살펴보면 건설재해는 안전관리의 문제였지, 발주방식과의 인과관계는 그 어디에도 없다.
지난 10년간의 유예기간 동안 선진외국 건설업체와 경쟁할 능력을 배양해 외화획득에 주력해야 옳지 않을까. 하지만 실상은 허수아비 정책관료들 또한 국민의 곳간을 지키기보다는 건설업계의 어려움에 더 귀를 기울이는 형국이라 우리 국민들은 더 불쌍해지고 있다.
신영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책사업감시단장
● 확대 시행 반대/ "자시공으로 중소건설사 고사 우려"
입찰자에 대한 질적 평가가 배제되면 건설업체의 기술 개발을 저하시키고, 부적격한 업체가 낙찰자가 되는 역선택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공공공사 입찰에서 가격경쟁은 필요한 수준을 넘어 거의 절대적 요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가격만을 가지고 낙찰자를 결정하는 것은 심각한 폐해를 유발할 수 있다.
가격만을 평가한다는 것은 입찰자의 기술력이 동일하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입찰자의 기술력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입찰자에 대한 질적 평가가 배제되면서, 건설업체의 기술 개발을 저하시키고, 부적격한 업체가 낙찰자가 되는 역선택(Adverse Selection)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더구나 최근 건설업의 현실을 보면, 공공공사 축소와 부동산 경기침체 등으로 100대 건설사의 30% 이상이 법정관리나 워크아웃 상태에 있다. 건설업 등록업체의 30%가 지난해 단 1건도 수주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러한 위기 상태에서 최저가낙찰제 확대는 견실한 업체마저 부도 위기로 몰아갈 우려가 있다. 특히 최저가낙찰제가 확대 적용될 예정으로 있는 100억∼300억원 규모의 공공공사는 주로 지방 중소건설업체의 수주 영역으로서, 지역 경제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높다는 점에서 최저가낙찰제 확대 시행은 긍정적 효과보다는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염려된다.
우선 최저가낙찰제의 문제점은 성실시공을 보장할 수 없다는데 있다. 입찰과정에서 덤핑 심사를 걸러내는 과정이 있다고는 한나, 실제 최저가낙찰제 하에서 이뤄진 적자시공은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실제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저가낙찰제 공사 10건중 8건 이상이 적자가 불 보듯 뻔한데도 기업의 현금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따낸 적자시공이라고 한다. 더구나 최근에는 예정가격 산정 과정에서 실적단가 적용이 확산되면서 적자시공 폭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무리한 저가 낙찰은 원도급 업체뿐만 아니라, 그 폐해가 하도급 업체, 자재납품업체, 장비임대업체 등에 연쇄적으로 전가될 수 밖에 없다. 상생이 아닌 공멸의 우려마저 높아질 수 있다. 또 비용 절감을 위해 위법ㆍ탈법행위가 늘어날 가능성도 제기될 뿐 아니라 부실시공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시설물 안전에 대한 위협도 커진다. 원가절감에만 치우쳐 인건비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미숙련된 기능공이나 외국인 근로자 투입도 증가될 수 밖에 없다. 최근 노동부 발표에서 보듯이 산업재해 다발 사업장의 90%가 최저가낙찰제 현장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 사례에서 드러났듯, 최저가 공사 현장에선 안전에 신경 쓸 비용과 여유조차 없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외국의 예를 보면,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과거에는 최저가낙찰제를 널리 활용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원도급 업체와 하도급간 분쟁 빈발, 하자보수비용 증가, 구조물 수명 단축, 산재 증가 등 사회적 비용이 크게 증가한다는 점을 깨닫고, 최근에는 가격경쟁을 배제하고 최고가치(Best Value) 방식을 널리 활용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최근 공공공사의 90% 이상이 종합평가방식으로 발주된다. 최저가 잣대만을 수주의 기준으로 놓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런 글로벌 추세와 거꾸로 가고 있다. 기술경쟁을 확대하고 건설업체의 국제경쟁력을 높여야 할 시점에서 단순히 가격경쟁만을 무차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물론 건설업계의 공사비 부풀리기와 국민의 혈세 낭비를 막는다는 차원에서 공공공사 입찰에서 예산절감이 차지하는 부분도 중요하다. 하지만 가격만을 가지고 낙찰자를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 적자시공을 당연시하는 정부와 업계 풍토 또한 바로 고쳐져야 할 대목이다. 기술력 있는 업체를 우대하고, 적격업체와 부적격 업체의 옥석을 가리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최민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건설정책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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