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동아시아 고전문학/심경호 지음/고려대학교 출판부 발행·464쪽·2만3,000원
클릭 몇 번이면 대륙 너머의 오지가 천연색으로 펼쳐지는 시대에 상형과 형성(形聲)의 글자로 기록된 옛사람들의 여행기를 읽는 일. 그것은 거리가 아닌 깊이로 가늠되는 시공으로 떠나는 일이다. 신라의 구법승이 깨달음을 찾고자 수십 년 인도를 떠돌고, 조선의 선비가 왜란 때 포로로 끌려갔다 탈출하는 과정에 담긴 여행은 쾌락을 좇는 현대인의 여가와는 거리가 멀다.
삶의 부수(附隨)가 아니라 골조로서의 여행. 저자 심경호씨는 에필로그에 이렇게 써 붙였다. "여행은 자신을 허무 속으로 내던지는 행위이다. 거기서 살아 돌아올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이 책은 한국 고전문학을 전공한 저자가 '여행과 동아시아 고전문학'이라는 강좌를 열고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뱃길에 풍랑을 만나 중국 남부를 여행하게 된 최부의 <표해록> , 여자의 몸으로 금강산 유람에 떠났던 김금원의 <호동서락기> , 유생의 눈으로 산사를 탐방한 정시한의 <산중일기> 등 20여편의 작품이 밑감이다. 산중일기> 호동서락기> 표해록>
"근대 이전의 사람들은 현재보다 훨씬 불편했을 노정에서, 지금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여행의 고통과 기쁨을 경험했다… 그들에게 여행은, 그것이 개인적인 것이었든 공적인 것이었든, 우연적인 것이었든 계획적인 것이었든, 그들의 내면을 변혁시킬 큰 계기가 되어 왔다."
같은 주제를 다룬 여러 여행기를 거미줄처럼 연결해 그 기록의 가치를 확장시킨 것이 이 책이 지닌 미덕이다. 예컨대 <표해록> 이 사쿠겐 슈로의 <입명기> ,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과 어떻게 같고 다른지 비교해보는 식이다. 수 세기 전의 한문 문장을 한글로 풀고, 그것을 지금의 지리 지식과 접합하느라 조금은 딱딱한 느낌이 있다. 동방견문록> 입명기> 표해록>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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