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지난주 정부 각 부처 장ㆍ차관과 청와대 주요 참모들이 참석한 국정토론회에서 공직사회의 부정ㆍ비리를 호되게 질타했다. 업체의 향응ㆍ접대를 받은 것부터 무사안일, 관료주의, 전관예우 논란 등 최근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든 부조리 사례를 조목조목 거론하면서 "온통 나라 전체가 비리투성이 같다"고 했다. 대통령의 격정 토로에 참석자들은 무거운 침묵 속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공직사회 부패 질타한 이 대통령
강한 노기 탓인지 요즘엔 자제한다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어법까지 등장했다. "나도 민간에 있을 때 을(乙)의 입장에서 뒷바라지를 해준 일이 있다"면서 국토해양부 직원이나 검사들이 아무런 죄책감 없이 접대 받는 관행을 지적했다. 청와대 참모진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로 시작하는 대통령의 말이 역효과를 낸다며 자제를 요청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작심하고 쏟아낸 질타에 국민들이 후련해할 법도 한데, 주변에서는 시큰둥한 반응이 더 많다. 이 대통령 자신이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공직사회에 만연한 비리에 큰 책임이 있는데 마치 남 얘기 하듯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 원로로서 현실정치에 날카로운 비판을 해온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21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정권 말기라고 해도 이렇게 부패한 건 처음"이라며"이 대통령은 장관 차관만 질타할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고 쓴 소리를 날렸다.
이 대통령은 '관행'을 강조했다. "공정사회의 기준과 잣대로 보면 과거에 관행적으로 했던 것들이 전부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폐가 있는 논리다. 요즘 불거지고 있는 공직자 비리들이 공정사회의 기준과 잣대 탓이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다면 공정사회 기치를 내건 게 잘못이라는 뜻도 될 수 있다.
최근 행정안전부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금품수수로 파면이나 해임 등 징계를 받은 국가 및 지방공무원은 624명으로, 2006년의 114명에 비해 5.5배 증가했다. 물론 이 통계만으로 공무원의 금품수수 비리가 5년 전에 비해 5배 이상 증가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정부의 사정 활동 강화로 적발 건수가 늘었거나 이 대통령 말마따나 공정사회 기치 때문에 전에는 그냥 넘어간 관행이 적발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잇달아 터지고 있는 공직사회의 중대 비리 사례들과 겹쳐 보면 현 정부 들어 만연해진 공직자들의 부패불감증과 기강 해이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대선 때 꿩 잡는 게 매라는 심정으로 투표한 국민들이 많았다. 좀 때가 묻고 청렴한 이미지가 아니더라도 경제를 살리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이명박 후보의 500만 표 차 승리에는 바로 이런 투표 심리도 크게 작용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 대통령이 지난해 공정사회 기치를 높이 들긴 했지만 실제로는 우리 사회의 부패 척결에 강력한 정책 의지를 보인 게 없다. 조각과 개각에서는 강부자ㆍ고소영 인사, 보은 인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법조계 출신이지만 정치판에 몸을 담근 지 오래인 측근을 감사위원에 앉혔더니 비리로 쇠고랑을 찼다. 이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과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특임장관 등은 최근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 받고 국회를 떠나는 공성진, 현경병 전 의원을 위로하는 만찬 자리를 마련했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이 정권의 부패불감증 지수를 보여준 또 다른 사례다.
부패척결에 소홀한 대가 치러야
이 정권은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는 평범한 격언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다. 좀 도덕적 하자가 있어도 일 잘하고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자신감에 넘쳐, 부패척결 개혁에는 소홀했다. 그 결과 임기 후반으로 접어든 지금 일자리 창출, 물가 안정 등 경제 살리기의 목표는 아득한데, 나라 전체가 비리투성이다. 청와대의 도움으로 되살아난 대검 중수부의 사정 칼날이 다음 정권에서 조자룡 헌 칼처럼 춤추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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