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KBS 수신료 인상안 처리 문제를 놓고 한나라당과 합의했다가 하루 만에 번복했다. 한ㆍ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 과정에서 오락가락했던 민주당이 또다시 갈지(之)자 행보를 보임에 따라 당 지도부를 향한 질타가 빗발치고 있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23일 "KBS 수신료 인상 문제에서는 정치적 중립성과 편성의 자율성에 대한 제도적인 보장과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방송법 개정이 선결 조건"이라고 전제한 뒤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단계에서 이뤄지는 수신료 인상을 반대한다"고 말해 합의를 파기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전날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전체회의에서 KBS 수신료를 매월 2,500원에서 3,500원으로 1,000원 인상하는 안건 상정을 두고 극심하게 대립하자 여야 원내대표단은 문방위 전체회의(28일)와 국회 본회의(29일 또는 30일)에서 표결 처리하기로 전격 합의했었다.
민주당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수신료 인상안 처리에 합의한 지도부를 향한 비판론이 쏟아지자 급히 합의를 번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엊그제 문방위 앞 복도에서 날치기 처리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다 느닷없이 수신료 인상안 처리에 동의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자가당착"이라고 비판했다. 천정배 최고위원도 "이런 바보 같은 '2중대'가 없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주류 측이 비판의 강도를 높이면서 한ㆍEU FTA 비준안 처리 과정에서 빚어졌던 당내의 노선 갈등과 정체성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파문이 확대되자 김 원내대표는 "여야 합의는 한나라당이 문방위 전체회의에서 당장이라도 날치기 처리를 하려는 상황에서 긴급피난조치로 취해진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그는 "약속위반이라고 지적한다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도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지도부에 대한 비판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민주당의 한 최고위원은 "지도부의 무능이 자꾸 반복된다면 국민 신뢰가 무너지고 수권 능력이 의심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진보신당은 논평에서 "문방위 파행의 책임은 한나라당에 있었지만 오락가락 행보로 이제는 모든 책임이 민주당으로 향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정곤 기자 j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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