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적 공분을 야기한 저축은행의 영업정지 직전 ‘특혜 인출’ 사태는 지난 2월 16일 오후 5시, 김양 부산저축은행그룹 부회장의 이 한 마디에서 비롯됐던 것으로 검찰 수사결과 드러났다. 그런데 김 부회장은 어떻게 영업정지 위기를 인지했던 것일까. 사태의 전말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이보다 한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올해 1월 14일 삼화저축은행 영업정지 이후, 금융위원회에 설치된 ‘저축은행 구조조정 태스크포스(TF)’는 주요 저축은행의 유동성을 점검하던 중, 부산저축은행그룹 계열사 5곳(부산, 부산2, 중앙부산, 대전, 전주)의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했다. 금융위는 이에 따라 2월15일 오후 8시30분, 부산저축은행 측에 “계열은행 5곳에 대해 일괄적으로 영업정지 신청을 하라”고 통보했다. 당시 영업정지 요건에 해당하는 곳은 대전저축은행 1곳뿐이었지만, 이 은행만 영업정지를 한다 해도 나머지 4곳에서 뱅크런 사태가 터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금융위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영업정지 방침이 미리 당사자 쪽에 흘러들어간 셈이다. 부산저축은행그룹에는 당연히 비상이 걸렸다. 다음날인 2월16일 오후 5시쯤 안아순 전무는 김 부회장에게 “거액을 예치해 둔 주요 고객들의 예금 손실이 불가피해 이의제기가 우려된다”고 전했고, ‘사전 인출 유도’ 지시가 떨어지자 신속하게 움직였다.
오후 6시~6시30분 금융감독원 파견 감독관의 눈을 피해 안 전무는 주요 고객 7명에게 연락해 “오늘 중으로 예금을 인출하라. 마감 관계는 창구에 얘기해 조치하겠다”고 안내했다. 부하 직원에게도 이들의 명단을 전달하면서 “마감 시간 이후라도 예금 인출을 해 줘라”고 지시했다. 부당 인출의 사령탑은 김 부회장, 행동대장은 안 전무였던 셈이다.
그리고 2월16일 오후 6시10분~8시35분, 그들만의 ‘부당 거래’가 이뤄졌다. 부산저축은행은 금감원 파견 감독관이 영업이 끝난 것으로 오인하고 있는 사이에 부산지역 신용협동조합 3곳과 호우장학회 등 VIP 고객 7명에게 총 28억8,540만원을 인출해 줬다. 검찰 관계자는 “계좌 거래 내역상 금액은 87억7,500만여원이지만, 여기에는 대출 상계 금액인 58억8,900만여원이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부당 인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을 목격한 부산저축은행의 직원들도 동요해 본인과 지인들 명의의 예금을 마구 빼간 것이다. 이렇게 인출된 예금은 312건, 28억6,064만원에 이른다.
대전저축은행에서도 김태오 대표이사의 지시를 받은 총무과장이 고액 예금주 33명에게 예금인출을 권유해 2월 16일 오후 3시20분쯤부터 고객 29명이 22억2,014만원을, 은행 직원들은 5억5,582만원을 빼간 것으로 조사됐다. 서민을 위해 설립됐다는 저축은행이 막후에서 고액 예금주들은 끝까지 챙기면서 서민들은 안중에도 없었던, 그야말로 ‘불공정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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