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자전거가 스크린을 열었다. 1980년대 초반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의 추억을 자극할 화면. 1982년 세계를 뒤흔든 히트작 '이티'의 한 장면을 형상화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사 엠블린엔터테인먼트의 로고다. 스필버그가 관여하는 영화에 거의 빠짐 없이 등장하는 이 로고는 지난 16일 개봉한 '슈퍼 에이트'에선 유별난 의미를 지닌다. '슈퍼 에이트'는 '이티'와 엇비슷한 시대를 배경으로 외계인을 등장시킨다. 단박에 '이티'를 떠올릴만한 영화다. 할리우드의 재간꾼 J J 에이브럼스가 각본을 쓰고 메가폰까지 쥔 '슈퍼 에이트'에 스필버그는 제작자로 참여했다.
'슈퍼 에이트'의 외계인은 위험천만한 존재다. 위압적인 거대한 덩치로 식량으로 삼기 위해 인간을 사냥한다. 공격적인 그의 행태에서 화해의 메시지를 찾긴 어렵다. 커다란 머리와 배불뚝이 외모가 친근하게 느껴졌던 '이티' 속 외계인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럼에도 '슈퍼 에이트'는 '이티'의 추억에 호소한다. 지직거리는 라디오와 워크맨, 슈퍼 8㎜ 카메라 등 단순히 사물만으로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다. '이티'를 보던 시절 몸에 스민 체험이 추억을 일깨운다. '이티'를 보고 자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세대라면 '슈퍼 에이트'를 보며 아슴푸레한 과거로 빠져들만하다.
추억이라는 연결고리 말고도 '이티'와 '슈퍼 에이트'엔 교집합이 존재한다. 어머니를 불의의 사고로 잃은 '슈퍼 에이트'의 소년 조(조엘 코트니)는 '이티' 속 결손 가정의 자녀 엘리어트(헨리 토머스)와 오버랩된다. 외계인에 맞서 모험에 나선 조의 친구들은 스필버그가 기획한 '구니스'(1985)의 등장인물들과 맞닿는다. 통제 불가능한 야수 같던 외계인이 자신의 촉수로 조의 몸을 움켜쥐고선 서로 교감을 나누는 모습은 외계인과 엘리어트가 손가락으로 생각을 나누는 '이티'의 명장면을 연상케 한다. 두 영화에 등장하는 위아래로 길쭉한 우주선도 얼추 비슷한 생김새다. '슈퍼 에이트'는 그렇게 짐짓 무관한 척하며 절묘하게 '이티'의 추억을 불러낸다.
'슈퍼 에이트'가 30~40대의 향수에만 기대는 것은 아니다. 조가 친구들과 영화를 찍으며 앨리스(엘르 패닝)에게 연심을 품는 모습은 시간을 초월해 소년 소녀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일 듯하다. 바람에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눈물 연기를 하는 청초한 앨리스, 앨리스를 구하기 위해 외계인 은신처로 뛰어드는 조…. 그런 장면에 심장이 반응하지 않을 10대는 아마 없을 것이다. '슈퍼 에이트'는 추억의 영화를 호출하여 세대를 아우른다. 추억을 상품화하는데도 할리우드는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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