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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사정(司正)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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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사정(司正)의 기술

입력
2011.06.2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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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7년 전, 한 중앙부처 고위 공무원이 덴마크 근무 시절 '실제로 겪은 일'이라고 들려준 이야기다. 그가 대사관에 부임했을 당시 교민 사회에서는 한국인 특유의 근면으로 거액을 모은 부부 사업가의 성공담이 화제였다. 그러나 1년도 안돼 그 부부는 '반면교사(反面敎師)'의 대상이 됐다. 덴마크 세무 당국이 무작위로 강도 높게 벌인 세무 조사에 걸려 무일푼이 될 정도로 거액을 추징 당했다는 것이다. 그 공무원은 "높은 세율을 핑계 대며 세금을 회피했던 일부 교민도 부부가 본보기로 당하는 것을 본 뒤에는 꼬박꼬박 세금을 냈다"고 말했다.

북유럽 덴마크에 대한 희미한 기억을 되살려 낸 사람은 지난 주말 만난 지인(知人) 사업가다. 요즘 언론 도마에 오른 한 중앙 부처와 관련된 사업을 하는 지인은 예전부터 접대와 향응 받는 걸 당연시하는 공공부문 종사자의 행태를 지적해왔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사정(司正)에 나섰으니, 이제는 좀 나아졌느냐"고 물었더니, 엉뚱한 답변이 돌아왔다.

"나아지기는커녕 사업에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저녁 술 자리 이후 납품 결재를 받는 게 관행인데, (담당자들이) 외부와의 접촉을 꺼리는 바람에 애를 먹고 있다"며 "하루빨리 사정 바람이 멈췄으면 좋겠다"고까지 했다.

공직사회 비리 척결을 강조하는 이 대통령은 귀에 거슬리겠지만, 지인 사업가처럼 대다수 국민은 이번 사정으로 공직사회의 비리가 근절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역대 대통령 임기 중반마다 어김없이 시작됐던 공무원 조직에 대한 '군기 잡기'가 되풀이된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감사원 주도로 7월부터 벌어질 대대적 감찰(한국일보 20일자 1면 보도)에서 적발될 일부 공무원도 냉소적 태도를 보일 것이다. 잘못을 뼈저리게 반성하기보다는 '다른 이는 걸리지 않았는데 나만 걸리다니,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국민 대다수가 기대를 걸지 않고, 공무원들이 사정 바람이 불자마자 복지부동(伏地不動)에 들어간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초기에만 요란할 뿐, 한바탕 폭풍이 지나면 비위 공무원이 활보하는 현상을 역대 정권에서 끊임없이 보아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비리로 옷 벗은 고위 공무원 가운데 자리를 잡지 못해 헤매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번 예를 들어보자. 2003년 대기업 계열사에 동생을 고위 임원으로 채용시킨 게 드러나 구속됐던 한 중앙부처의 A국장. 그는 대형 회계법인에서 거액 연봉을 받으며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2004년 사무실에서 산하단체 관계자로부터 거액 촌지를 받다가 총리실 암행감찰반에 걸려 곧바로 옷을 벗은 B씨. 그는 공무원 시절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지방자치단체 산하 공기업 사장으로 5년 가까이 일하고 있다. 모두 법적으로는 문제 없다지만, 일반 국민은 받아 들이기 힘들다.

'비위 공무원 불패'의 상황이 이렇다면 결론은 간단하다. 일단 걸리면 징벌적 차원에서 비리 공직자가 거의 모든 걸 내놓게 하는 '덴마크 식'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부정한 행위가 적발되면 그에 따라 얻은 수익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치르도록 하는 원칙이 확립돼야 하는 것이다.

온정주의 정서가 강한 한국 사회의 특성상 '덴마크 식'으로 처벌 강도를 높이는 순간 곳곳에서 '과잉처벌' 논란이 제기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변화가 없다면 4, 5년 주기로 공허한 사정 바람이 공직사회에 불어 닥치는 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 대통령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 결연한 의지로 새로운 사정 방법을 찾아내길 기대한다.

조철환 경제부 차장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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