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주부 장모(41)씨는 수리남으로부터 입국한 조모(45)씨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남미에서 유럽으로 금광 원석이나 보석을 운반해 주면 400만원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장씨는 일행 4명과 함께 비행기표를 공짜로 제공받고 10월21일 남미 프랑스령 가이아나에 입국했다. 현지에서 만난 강모(62)씨는 장씨에게 여행용가방 2개와 여행경비 550만원을 건네며 "프랑스 오를리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는 흑인에게 건네주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10월30일 장씨 등 일행 2명은 공항에 도착했다 영문도 모른 채 프랑스 경찰에 검거됐다. 여행용가방에 무려 37㎏의 코카인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123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었다. 장씨는 대서양에 있는 프랑스령 외딴섬에 수감돼 2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다.
전과가 없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꼬여 남미로 데려온 뒤 마약 운반책으로 활용한 한국인 출신 국제 마약상이 검찰에 붙잡혔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김희준)는 남미 최대 마약카르텔인 '칼리 카르텔'과 연계해 남미에서 유럽으로 코카인을 대량 밀수한 혐의(마약류불법거래방지에관한특례법 위반)로 조모(59)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19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조씨는 2004년 10월 국내에서 모집한 주부 장씨 등 운반책 2명을 통해 남미 가이아나에서 프랑스로 코카인 37㎏을 밀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씨는 2005년 3월 국내에서 데려온 이모(46)씨를 통해 코카인 11.5㎏을 페루에서 네덜란드로 몰래 운반하려 한 혐의도 받고 있다. 조씨가 두 차례에 걸쳐 밀수한 코카인 48.5㎏은 소매가 기준 1,600억원 상당으로 160만명이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이다.
검찰 조사 결과, 조씨는 "1인당 소지할 수 있는 양이 제한된 보석원석을 운반해 주면 400만~500만원을 주겠다"며 국내에서 '지게꾼'을 끌어 모았다. 조씨는 현지인에게 코카인 구입과 판매처 확보를 맡겼고, 사업차 수리남에 체류중인 한국 동포를 운반총책으로 활용해 국내에서 피라미드 식으로 사람들을 포섭했다. 검찰이 발견한 100여장의 여권 사본을 감안할 때 범행에 동원된 국내 지게꾼들은 수백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조씨 조직에 포섭된 사람들은 주부와 용접공, 결혼준비 여성, 미용실 종업원 등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렵고 전과가 없는 평범한 시민들이라고 검찰은 밝혔다.
지게꾼 대부분은 마약을 운반하는 줄을 전혀 알지 못했지만 적게는 1년6개월에서 많게는 5년 동안 국내 거주 가족들과 연락도 못한 채 비참한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검찰 관계자는 "운반하는 물건이 마약인 줄 몰랐더라도 해당 국가의 관련 규정에 따라 교도소에 수용됐다"고 전했다.
2005년부터 인터폴에 수배됐던 조씨는 2009년 7월 8억원 상당의 코카인을 밀수하기 위해 브라질에 입국했다 검거됐다. 조씨는 우리 검찰의 범죄인인도청구를 통해 지난달 26일 국내에 압송됐으며, 검찰은 조씨의 여죄를 추궁하고 있다. 1980년대 선박냉동기사로 8년 동안 수리남에 머물렀던 조씨는 1994년 사기 혐의로 수사망이 좁혀오자 남미로 도망쳐 수리남 국적을 취득했으며, 이후 국제마약밀수로 부를 축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희준 부장은 "조씨는 수리남에 오래 머물며 폭넓은 인맥을 형성한 데다 코카인 밀수를 위한 대규모 조직을 구축해 '마약왕'으로 등극했다"고 말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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