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오후3시, 온라인 게임대회인 LG 시네마3D 슈퍼토너먼트 결승전과 GSL(글로벌 스타크래프트2 리그) 결승전이 벌어진 서울 학여울의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에 외국인들이 객석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들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개막 두 시간 전부터 줄을 서 기다렸다.
지금 유럽엔 'K팝(한국대중음악)'열풍이 거세지만, 사실 K게임(한국 온라인게임)의 열기 역시 그 못지 않다. K팝 한류의 중심에 소녀시대, 동방신기, 슈퍼주니어가 있다면 K게임에도 박수호 최성훈 문성원 같은 한류스타들이 있다.
K게임이 하나의 스포츠코드, 즉 한류를 형성하고 이들 게이머들이 월드스타로 부상한 것은 지난해 9월 온라인게임 관련 업체 그래텍이 스타크래프트2 리그를 개최하면서 대회 동영상을 곰TV로 인터넷에 생중계한 것이 계기였다.
그래텍은 지금도 모의전략게임 스타크래프트2를 개발한 미국 블리자드와 정식계약을 맺고 중계 사이트(www.gomtv.net)를 통해 모든 경기를 해외에 유료 중계한다. 국내는 무료이지만 미국 유럽 중국 등 180개국에서 경기를 인터넷 생중계로 보려면 1인당 19.99달러를 내야 한다.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외국에서는 공짜로 대회를 직접 볼 수 없다 보니 유료중계권이 불티나게 팔려 나가는 상황. 대회 역시 한국어와 외국어로 동시 생중계된다. 배인식 그래텍 사장은 "블리자드와 계약 때문에 정확한 유료판매 금액을 밝힐 수 없지만 깜짝 놀랄 만한 액수"라고 말했다.
한류 게임스타를 향한 외국인들의 열광은 상상 이상이다. 외국의 게임마니아들은 좋아하는 선수의 대회를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한국까지 찾아온다. 그렇게 대회마다 찾아오는 외국인 관람객이 수백 명에 이른다. 이날도 대회장은 방학하자마자 캐나다에서 날아온 외국인들을 비롯, 일본 미국 등 해외 취재진들로 북적거렸다.
LG 시네마3D 슈퍼 토너먼트 결승전이 먼저 시작되면서 '재야의 고수'로 통하는 박수호 선수가 소개되자 외국인들이 막대 풍선을 두드리며 환호했다. 마침 이날 결승전은 세계 최초로 열린 입체 영상(3D) 게임대회여서 외국인들의 반응이 더 열광적이었다. 3D 안경을 쓴 외국인들은 전방의 400인치 발광다이오드(LED) 화면에서 박 선수가 조종하는 저그 종족의 게임 캐릭터가 튀어나와 상대인 김승철 선수의 테란 진영을 초토화할 때마다 발을 구르며 즐거워했다. 결국 외국인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 박 선수가 4승 1패로 승리했다.
잠시 쉬는 사이 경기를 참관한 미국인 세인 벤슨과 크리스토퍼 호셔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모두 울산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벤슨씨는 "평소에도 인터넷으로 GSL 중계를 빠지지 않고 지켜본다"며 "결승전을 직접 보고 싶어 여자친구와 울산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고 말했다.
이들은 특히 두 번째 시합으로 열린 GSL 결승전의 문성원 선수를 응원했다. 벤슨씨는 "문 선수 팬이지만 이번에는 상대인 최성훈 선수가 이겼으면 좋겠다"며 "알려지지 않은 선수가 우승하는 게 게임 대회의 묘미"라고 말했다.
문 선수는 이달 초 미국서 열린 게임대회인 MLG에서 우승하며 해외 팬이 부쩍 늘었다. 그의 별명은 '테란의 황태자.'전설적 프로게이머 임요환이 만든 슬레이어스팀 소속이다. 하지만 이들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이날 GSL 결승전은 예상을 뒤엎고 프라임팀 소속 최성훈 선수가 네 판을 내리 이기며 완승했다. 서울대 동물생명공학과 4학년 휴학중인 최성훈은 테란을 활용한 변칙전술에 능해 다크호스로 평가받아왔다.
이처럼 외국인들이 국내 온라인 게임대회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온라인 게임은 이미 젊은 층 사이에선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지만, 외국에선 게임대회도 거의 없고 중계는 더더욱 없는 상황. 호셔씨는 "영화나 음악은 어느 나라나 있지만 인터넷 게임중계는 오직 한국에서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그래텍의 GSL 중계 동영상 덕분에 외국에선 게임 뿐 아니라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다"며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게임도 분명 하나의 한류 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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