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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떠돌이개와 함께한 행복한 나의 인생' 性과 種의 경계를 넘는 '진실한 사랑'의 한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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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떠돌이개와 함께한 행복한 나의 인생' 性과 種의 경계를 넘는 '진실한 사랑'의 한자락

입력
2011.06.17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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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개와 함께한 행복한 나의 인생 /테드 케라소티 지음·황소연 옮김/민음사 발행·514쪽·1만8,000원

여행작가인 이 책의 저자는 미국 와이오밍 주 그랜드티턴 국립공원 내 한 자연마을에 산다. 그는 취미로서가 아니라 먹기 위해 사냥을 한다. 틈날 때마다 아프리카와 극지 등 온 자연지역을 누비고 다니며, 때로는 목숨까지 걸며, 보고 겪은 바를 글로 옮겨 돈을 벌지만 짐작하건대 그는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좋아서 그렇게 다닌다. 그는 이 시대가 허용한 한 가장 자연에 근접한 자연인 가운데 한 사람일 것이다.

이 책은 독신인 저자가 한 여행지(샌환 강가)에서 만난 떠돌이 개 '멀'(Merle)과 인연을 맺고, 서로를 알아가고, 함께 울고 웃고 기대며 끝내는 개의 죽음으로 이별하는, 한 세월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주인공은 멀이다. 저자는 다만 멀의 동반자로서, 통역자로서, 내레이터로서 멀의 이야기를, 개 일반의 이야기를, 멀과 함께 누린 자연과 동물 이야기를 전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주인공 멀은 개를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나, 설사 개를 사랑하지 않는 이라도 사랑하게 될 만큼 눈부시게 매력적이다. 고집 세고, 위엄 있고, 다감하고, 무엇보다 자유롭다. 또 멀이 누린 자유의 공간과 반려자인 저자의 사랑은 인간을 사랑하는 개라면 누구나, 설사 인간을 혐오하는 개라도 인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할 만큼 아름답다.

-녀석은 아직 강아지였지만 과묵하고 위엄이 있었다. 신뢰는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서 얻어야 한다는 점을 삶을 통해서 배워 알고 있었던 것이다.(38쪽)

-툭,툭,툭. 녀석의 꼬리가 카펫 바닥을 세게 때렸다. 인간은 이 흐뭇한 소리를 얼마나 오랫동안 들어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영원한 그 후렴구, 시대를 초월해서 울려 퍼지는 그 노래, 인간이 묻는 목소리에 개가 꼬리로 대답하는 그 소리였다.(…)서로에게 꽂히는 눈길. 우리는 함께 한다.(75쪽)

-멀의 따뜻한 털과 오르락내리락 하는 녀석의 갈비뼈를 느끼며 잠에서 깨어나면, 시간이 사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 나는 녀석의 뒤를 바짝 쫓으며 우리가 누구인지 잊었다가 기억하기를 반복했고, 그렇게 우리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시간을 넘나들었다.(133~138쪽)

-그 부드럽고 포근한 진동이 내 다리를 타고 올라와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 멀은 손이 없었음에도 날마다 내 손을 잡아 주었다.(…) 처세술이 뛰어난 멀은 내 앞머리에 난 흰머리를 지적하지 않았다. 그 대신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내 다리에 기댔다. 우리는 함께 늙어가고 있었다.(377~393쪽)

저자는 책에 멀과 함께 10여 년 동안 등산, 야영, 스키타기, 사냥 등을 함께 하며 겪은 따듯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넘치도록 담았다. 간간이 개의 생리와 기질, 인간과 개의 관계의 역사 등을 소개하며 교감의 폭을 넓힌다. 그럼으로써 저자는, 역시 멀과 함께, 책의 한 구절-결국 개와 함께 사는 삶의 진실이란 당신이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삶의 진실과 같다.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433쪽)-에서 말한 것처럼, 성(性)과 종(種)의 경계를 넘어서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관계, 자유와 이해와 사랑의 메커니즘과 그 진실의 한 자락을 펼쳐 보여준다.

장담하건대 책의 끄트머리쯤에서 만나게 될 어떤 구절, 예컨대 "넌 최고였어. 내 개가 되어줘서 고맙다"에서, 안타까운 이별을 경험한 이라면 누구나 눈시울이 젖을 것이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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