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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은퇴대국의 빈곤보고서' 돈 걱정에 집단우울을 겪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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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은퇴대국의 빈곤보고서' 돈 걱정에 집단우울을 겪는 일본…

입력
2011.06.17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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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대국의 빈곤보고서/전영수 지음/맛있는책 발행·400쪽·1만6,000원

무연사회(無緣社會). 지난해 일본 사회를 뒤흔든 유행어다. 가난한 노인들이 돈이 없어 인간관계가 끊기고, 일본 특유의 강한 사회적 네트워크가 붕괴됐다는 의미다. 빈곤노인의 삶을 주제로 한 같은 이름의 NHK 다큐멘터리가 1월에 방영되면서 일본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부자 일본의 자존심을 뒤흔들어 놓을 만큼 빈곤노인들의 삶은 비참했다.

일본의 오늘이 한국의 내일이라는 말이 있다. 여러 분야에서 그렇지만 고령화 사회의 양상도 예외는 아니다. 2050년 한국이 세계 최고령국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최근 나왔는데,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 사회의 충격을 겪고 있다. 한양대 국제학대학원(일본학과) 겸임교수인 경제평론가 전영수씨는 <은퇴대국의 빈곤보고서> 에서 고령화와 함께 일본 사회에 닥쳐온 노인빈곤 실태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무연이 부각된 것은 고독사(孤獨死), 즉 아무도 모르게 숨지고 한참 뒤에야 발견되는 사람들이 급증한 데서 비롯됐다. 일본에선 연간 3만2,000여명의 고독사가 보고되고 있다. 물론 고령의 독신자들이다. 고독사한 사람들을 추적해 보니 가족이나 친척은 있지만 그 관계가 벌어졌을 뿐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연(緣)은 사람들의 관계이자 네트워크다. 무연은 그 연이 없어졌거나 끊겨진 상태다. 주변에 의지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전통적인 혈연(血緣)이나 지연(地緣), 학연(學緣)과 회사를 다니면서 만들어진 사연(社緣)이 모두 끊어진 사회적 고독ㆍ고립이다.

저자는 일본에서 연이 기능하지 않게 된 것은 노인들이 가난해졌기 때문이고, 그 가난은 사회안전망이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일본의 사회안전망은 기업 중심으로 이뤄졌다. 고도성장기에 기업들은 종신고용ㆍ연공서열을 통해 생활을 보장해주었다. 대졸 후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면 결혼, 육아, 퇴직 후의 생활까지 기업이 뒷받침했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지방경제 종사자는 중앙정부의 공공투자로 일자리가 보장됐다. 정부의 복지시스템은 여성ㆍ고령근로자 등 기업이 커버하지 못한 극히 일부에 한정됐을 뿐이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 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진 가운데 신자유주의가 유입되면서 기업의 복지안전망이 붕괴되자 중산층 이하의 삶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본 인구 1억2,700만명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은 2,900만명으로 22%에 달한다. 가계 금융자산 1,453조엔 중 약 900조엔을 65세 이상이 보유 있을 정도로 부자노인도 많다. 그러나 수로는 가난한 노인들이 훨씬 많다고 저자는 말한다.

고립은 노년층에 국한되지 않고 젊은 세대로 확대되고 있다. 홀로 사는 30~40대의 독신세대가 그들이다. 일본의 독신가구 수는 1,500만에 육박한다. 저소득,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연의 시작이랄 수 있는 결혼은 엄두도 못 낸다. 주간 다이아몬드는 "학교 졸업 후 연애ㆍ취직ㆍ결혼이라는 컨베이어 식의 행복보장 시대는 끝났다"며 "괴로워하다 결국엔 독신생활을 결심하게 된다"고 썼다.

이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2005년 기준 남성의 생애미혼율(50세 시점에서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은 약 16%, 6명중 1명 꼴이다. 결혼이 해결책이나 '트릴레마'로 불리는 3대 인생고충이 부담이다. 본인 노후, 부모 간병, 자녀 교육의 세가지 고충 가운데 어느 것도 만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저자는 일본 사회가 '돈 걱정을 둘러싼 집단우울'을 겪고 있다고 표현한다.

책은 은퇴 이후 일본 노인들의 삶을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본다.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가 식재료 등 필수품을 사기 어려운 '구매난민'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 가난한 동네에 소매점이 사라져 두부 한 모 사려면 1km를 걷거나, 운행 횟수가 줄어든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일도 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겐 생필품 구매난은 생명줄이 위협받는 것이다. 일본 전국에 구매난민은 최소 6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노인들이 돈의 압박을 가장 많이 받는 것이 간병비와 장례비다. 노환비용이 5년에 1억엔이 든다는 통계까지 있다. 수도권은 장례비용이 평균 500만엔 이상이다. 먹고 살기 힘들어 장례와 제사를 못 챙기는 후손도 많다.

노인 문제는 복합적이다. 은퇴 순간 사회ㆍ경제ㆍ육체ㆍ정신적 변화가 동시에 수반되기 때문이다. 노인들의 정서가 불안해져 범죄로까지 이어진다. 그 상징 키워드가 망주(妄走) 또는 폭주(暴走) 노인이다. 미쳐 날 뛴다고 괴물로까지 비유된다.

일본 노인 가운데 비교적 유유자적한 노후 생활을 즐기는 이들의 가장 큰 버팀목은 국민연금, 후생연금, 기업연금 등 3층 구조의 연금이다. 그러나 1~3층을 다 받는 1,400만명의 선택 받은 샐러리맨 외에 연금생활은 곧 빈곤의 시작일 뿐이다.

저자는 길어진 인생 후반기와 정부 재정을 고려하면 장수사회의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평생 현역을 통한 근로소득 확보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간간이 외신을 통해 단편적으로 전해진 일본 노인들의 은퇴 이후 삶을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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