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일반의약품 중 44개를 약국외 판매가 가능한 의약외품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으나 제약업계는 일단 숨을 죽였다. 복지부의 계획대로라면 이르면 8월엔 편의점이나 슈퍼마켓, 대형마트 등에서 이 약들을 팔 수 있게 된다. 판매 여부는 제약회사들에 달려있다.
그러나 복지부의 계획이 발표된 다음날인 16일 대부분의 제약사들은 입장을 뚜렷하게 밝히기를 꺼렸다. 의약외품 전환 대상으로 드링크류인 '박카스'와 정장제인 '신비오페르민에스정'이 포함된 동아제약은 "(약국 외 판매는) 아주 신중히 결정할 문제"라며 "현재로서는 약국 판매망을 유지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동아제약 관계자는 "박카스는 의약품으로서 50년간 인기를 끈 장수 제품인데 슈퍼에서 일반 음료와 섞여 판매되면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장제인 청계미야비엠정을 포함해 5개 제품이 전환 대상이 된 청계제약도 "아직은 슈퍼 등을 통해 약을 팔 생각은 없다"며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연고인 안티푸라민과 마데카솔을 만드는 유한양행과 동국제약 측은 관망 중이다. 두 회사 모두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다. (판매 여부와 관련해) 결정된 바가 아무것도 없다"며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유한양행이 대형마트 유통에 대비해 안티푸라민의 값을 올릴 것이란 소문이 돌아 회사 측이 "사실이 아니"라며 부인하는 등 뒤숭숭한 분위기도 감지됐다.
제약사들이 이처럼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대한약사회 측을 의식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놓고 반겼다가 약사회에 밉보일까 두려워서다. "슈퍼 판매를 할 계획이며 가격을 12~13% 낮춰 유통시킬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가 다시 전화를 걸어와 "계속 약국 판매를 유지하겠다"고 부인한 제약사도 있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일반약은 약사들의 권유나 복약지도가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그들에게 잘못 보였다가 다른 약 판매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박카스는 동네약국의 수입에도 톡톡히 한 몫을 하는 약이다. 지난해 매출액이 약 1,280억원으로 현재 일반약 중 1위 규모다. 약사회는 박카스에 든 '무수카페인'을 거론하며 의약외품 전환에 반대했지만, 실은 박카스가 동네약국들의 수입에 무시 못할 비중을 차지해서 그렇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동아제약은 2004년 의약외품용 박카스를 만들어 유통시키려 했다가 약국들의 반발에 부딪혀 접은 적이 있다.
반면, 붙이는 파스 제약사로는 유일하게 포함된 대일시프핫과 대일시프쿨의 대일화학공업은 약국 외 유통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중이다. 복지부는 파스류 중 항히스타민제나 살리실산외용제, 살리실산메틸, 케토프로펜, 피록시캄 등이 든 제품을 제외하고 이들 제품만 의약외품 대상으로 정했다. 두 제품은 2000년 이후 생산이 중단됐으나 이번 복지부의 발표를 계기로 재생산이 검토되고 있다. 대일화학공업 관계자는 "회사로서는 좋은 일"이라며 "직접 제조 또는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등 여러 방안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약사회는 김구 회장이 단식농성에 들어가는 등 복지부의 방침에 뒤늦게 반발했다. 약사회는 "전문의약품의 일반의약품으로의 전환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다면 어떠한 의약외품 분류 결과도 수용할 수 없다"며 "이번에 일반의약품이 의약외품으로 분류되는 과정이 복지부의 성과위주로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전국 시ㆍ도 약사회장들도 성명서를 통해 "일방적인 의약품 약국 외 판매 발표를 규탄한다"며 "향후 약사법 개정을 저지하지 못하면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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