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가 예술가인가. 기준부터 모호하다. 그들이 과연 근로자인가. 다른 업종과의 형평성도 맞지 않다. 지난 1월 시나리오작가 최고은 씨의 사망을 계기로 한나라당과 문화관광부가 공연ㆍ영상 분야 예술인에 대한 산재ㆍ고용보험 적용을 추진하는 데 대해 고용부와 기획재정부는 이런 반대논리를 펴왔다.
모두 일리가 있다. 엄격히 보면 예술인 대부분은 자유전문직이다. 그리고 학습지교사나 택배기사, 가사도우미 등도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마당에 예술인들만 '특별대우'하려는 것에도 시비의 소지는 있다. 직업의 특성상 고용 형태와 기간, 근로의 성격이 워낙 다양해 그에 따른 혼란도 예상된다. 그래서 정부와 여당이 예술인복지법을 통해 4만~5만 명의 공연ㆍ영상 예술 종사자들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과 복지재단 설립을 서두르기로 15일 합의한 것을 두고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그렇다고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 예술인들의 현실을 생각해야 한다. 아무리 예술가는 배가 고파야 한다지만, 전체 예술종사자의 3분의 1 이상이 창작행위를 통한 한 달 수입이 전혀 없어 막노동판을 전전하고 끼니를 걱정하는 상황에서 예술의 활성화나 예술인력의 고급화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 프랑스 등 다른 문화선진국들처럼 적어도 그들의 생존권은 국가가 보장해주는 것이 마땅하다. 꼭 예술가에 대한 특혜 차원이 아니라, 사회복지와 실업대책 차원에서라도 필요하다.
형평성에 집착해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다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우선 급한 것부터 하나하나 해결하면서 전체적 균형을 잡아가는 것이 현실적이다. 직업과 근로형태의 특성상 예술인들에게는 이번에 당정이 합의하지 못한 고용보험 역시 절실하다. 따라서 정부는 하루라도 빨리 다른 직종들의 형평성까지 고려한 종합적인 틀 속에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모호하고 일방적이고 제멋대로인 공연ㆍ영상 분야의 저작권에 대한 합리적 기준도 마련해 예술가들이 더 이상 자신의 권리마저 포기한 채 살아가지 않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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