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하우스맥주로 손꼽히는 잠실 롯데호텔 메가씨씨에 들어서자 알싸한 술 익는 향이 풍겨왔다. 통유리 너머로 훤히 들여다 보이는 주방에서 브루마스터(맥주양조기술자) 송훈(37)씨가 마침 맥아를 끓인 물에 효모를 넣으려던 참이었다. 두 개의 큰 구릿빛 양조탱크에서 끓인 맥아즙은 발효 탱크로 옮겨져 있었다. 아직 숙성이 덜된 맥아즙을 한 모금 들이켜자 달콤하고 고소한 식혜 맛이 났다. 맥아즙은 2,3주간의 숙성기간을 거치고 나면 단맛을 씁쓸한 맛이 누르고 고소한 풍미가 더해져 비로소 맥주가 된다.
술을 그리 즐기지 않는 사람도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누구나 똑같이 병뚜껑 따고 마시는 맥주가 좀 물린다면, 저마다 독특한 맛과 향을 지닌 하우스맥주를 즐겨보자. 부드러운 거품을 고봉밥처럼 얹은 하우스맥주의 생생함이 맥주 특유의 쌉싸래한 맛을 한층 시원하게 느끼게 한다. 방부제나 첨가제를 넣지 않고, 효모를 인공적으로 제거하지 않아 영양도 풍부하다. 독일 뮌헨공대에서 양조법을 배운 송훈 브루마스터의 안내로 하우스맥주의 세계로 들어가봤다.
한 잔의 맥주가 나오기까지
맥주 만드는 재료는 물, 맥아, 홉, 효모가 전부다. 이 단출한 재료의 조합으로 얼마나 깊은 맛을 내느냐는 브루마스터의 손에 달렸다.
하우스맥주는 대량생산되는 일반 맥주에 비해 제조과정이 까다롭고 복잡하다. 일단 맥아(싹을 틔운 보리를 건조시킨 후 싹을 제거한 것)와 물을 함께 끓인다. 어떤 종류의 맥아를 쓰느냐에 따라 맥주의 종류가 결정된다. 가령 훈제한 맥아를 쓰면 흑맥주, 밀 맥아를 쓰면 밀 맥주가 탄생한다. 다음은 끓인 맥아즙에서 찌꺼기를 제거한 뒤 다시 한번 더 끓이면서 맥주의 쓴맛을 내는 홉을 넣는다. 홉과 섞인 맥아즙을 원심분리기 안에 넣고 불순물을 한번 더 걸러내 맑게 만든 뒤 식힌다. 산소공급기에서 활성화한 효모를 맥아즙에 섞어 발효시킨 뒤 장기간 숙성을 거친다.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맥주가 나오기까지 대략 한 달. 그 기간 동안 브루마스터들의 속은 새카맣게 타 들어간다. 온도, 압력, 온도 등이 한 치라도 어긋나면 맛을 버려 몽땅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길다란 맥주 분배기를 따라 황금빛 맥주가 쏟아지고, 부드러운 거품이 손님들의 입가에 얹힐 때 비로소 이들은 마음을 놓는다.
입맛 따라 즐기는 하우스맥주
송씨가 만드는 하우스맥주의 종류는 세 가지. 밀 맥주인 '바이젠'은 과일향이 풍부하고 맛이 부드럽다. 훈제한 맥아를 쓰는 흑맥주 '둔켈'은 담백하고 고소하다. 밝은 황금빛을 띠는 '필스너'는 깔끔하고 쌉싸래한 뒷맛이 특징이다.
국내 하우스맥줏집들은 대부분 이 세가지 맥주를 만든다. 이름은 비슷비슷하지만, 누구의 손을 거쳤는지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다르다. 쓴 맛이 강하기도 하고, 거품이 사라지는 속도도 제각각이다. 국내에 처음 하우스맥줏집을 연 옥토버훼스트는 독일 유학파 1호인 방호권 브루마스터의 손맛이 담긴 맥주를 내놓는다. '바이스 비어', '둥클레스 비어', '필스너 비어'가 대표적인 메뉴고, 맥주와 레모네이드를 섞은 '라들러'도 별미다.
국내에서 체코식으로 하우스맥주를 만드는 서울 서교동 캐슬프라하도 맥주의 향긋한 맛으로 유명하다. 외관이나 내부 인테리어도 체코 분위기를 살려 맥주 맛을 돋우고, 국내 최초로 카모마일 허브 등을 사용해 풍미를 가미한 '카모마일 바이젠'을 선보인다.
매장에서 직접 맥주를 만들 뿐 아니라 전북 순창군에 맥주공장을 짓고 있는 서울 서초동의 헤르젠도 하우스맥주 명소다. 올 가을 첫 제품이 나온다. 국내파 브루마스터인 정영석씨가 만드는 '둔켈'은 깨를 볶듯 많은 양의 맥아를 볶아 내 고소한 향이 다른 데보다 강하다. 또 최근 홉의 쓴 맛을 즐기는 이들이 늘면서 홉향이 강조된 맥주를 내놓는다.
맥주의 다양화가 숙제
2002년 국내에 첫 소개된 하우스맥주는 최근 수입맥주에 그 자리를 내주며 한때 100여개에 달했던 하우스맥줏집이 절반으로 줄었다. 하우스맥줏집으로 손꼽혔던 서울 삼성동 코엑스의 '오킴스 브로이 하우스'마저 지난달 말 문을 닫았다. 업계에서는 높은 가격과 한정된 맥주 종류를 실패 요인으로 꼽는다. 구조적인 문제도 컸다. 대량생산이 법으로 금지됐고, 외부반출도 제한됐기 때문이다. 시설비용 부담이 큰데다 수입산 원료값 상승까지 겹쳐 하우스맥줏집들은 적자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가격이 올랐고, 맥주 개발에 대한 투자도 줄었다. 하우스맥줏집 관계자들은 "맥주시설과 여건이 한정된 상황에서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맥주를 선보이지 못한 것이 실패한 가장 큰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독특한 맛에 끌려 하우스맥주를 찾는 마니아층이 꽤 두텁게 형성됐다. 송씨는 "맥주 맛만 보고 찾아오는 분湧?꾸준히 있고, 보관용기(케그)에 담아 판매할 수 있는 유통경로도 조금씩 트여 향후 맥주개발에 박차를 가한다면 승산이 있다"고 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 홈브루 키트만 있으면 우리 집 맥주 즐겨요
'하우스' 맥주라니, 내 집에서도 만들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방법, 있다. 시중에 판매하는 '홈브루(자가양조) 키트'를 이용하면 된다. 맥아와 홉, 첨가물 등을 섞은 맥주원액까지 들어있어 초보자들도 손쉽게 도전해 볼 수 있다. 실험정신을 발휘한다면 맛, 향, 알코올 도수를 다양하게 조절해 입맛에 꼭 맞는 나만의 맥주를 만들 수 있다.
'홈브루 키트'는 인터넷 등에서 살 수 있는데, 30ℓ 이상 발효조(케그)와 맥주 원액, 효모, 부스터, 페트병 등으로 구성돼 있다. 가격은 6만5,000원부터 12만원 대까지 다양하다. 키트를 이용해 맥주 만드는 과정을 알아봤다.
▦워트 만들기: 먼저 발효조 속에 뜨거운 물을 3.5ℓ 붓고 여기에 맥주 원액을 넣는다. 이때 맥주 원액 캔을 통째로 미리 뜨거운 물에 담가두면 원액이 캔에서 잘 쏟아진다. 설탕 1㎏을 추가로 넣은 후 소독된 막대로 약 5분간 충분히 젓는다. 이후 찬 생수 20ℓ를 발효조에 부어 온도를 20~25도로 맞춘다. 이 상태가 워트(wort)다. 이때 끈적끈적한 맥주 원액이 발효조의 바닥에 붙거나 잘 섞이지 않으면 발효가 제대로 되지 않거나 발효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잘 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효모 넣기: 온도 20~25도로 맞춰진 워트에 효모를 넣는다. 온도가 너무 높으면 효모가 죽을 수 있으니 반드시 온도를 확인한 후 효모를 넣는다. 500㎖의 미지근한 물에 효모를 풀어서 넣으면 더 좋다. 넣고 세게 젓는다. 인삼, 초콜릿, 계피, 과일 등을 가루나 과즙 형태로 넣으면 그 향이 난다.
▦1차 발효: 공기차단기를 뚜껑상단에 있는 구멍에 설치한다. 청결하고 햇볕이 들지 않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두고 실내온도(18~25도)에서 발효시킨다. 보통 4~6일 정도 걸린다.
▦2차 발효: 발효조의 아랫부분에 있는 꼭지를 이용해 발효조 바닥의 침전물을 제외한 맥주를 압력병으로 옮겨 담는다. 막 옮긴 맥주에 탄산가스가 생기도록 설탕을 500㎖당 5g씩 첨가한다. 소독된 뚜껑으로 막고 여러 차례 세게 흔든 뒤 2,3일간 같은 온도에서 발효시킨다. 이후 서늘한 곳에서 일주일 이상 숙성시켜 병 안의 맥주가 투명해질 때 마시면 된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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