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재명 경기도 성남시장이 돈봉투를 들고 오는 사람이 많아 CC(폐쇄회로) TV를 설치했다고 한다. 그간 지방자치단체장들의 비리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일 것이다. 구정을 책임지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울 따름이다.
1년 전 구청장에 당선된 뒤 한 지역인사에게서 만년필을 선물로 받았다. 그는 “구청장의 결재 하나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니 정의롭게 결재하라”고 당부했다. 주민들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들이 구청장의 결정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잊지 않기 위해 그 말을 가슴에 새겼다.
그런데 막상 구정 현장을 체험해보니 결재를 하는 과정에서 구민들과의 대화가 절대 부족했다. 주민들을 직접 대면하는 직원들과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느껴 개인 이메일을 공개했고, 기다렸다는 듯 쏟아진 수백 통의 이메일을 읽어보며 공무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유연하고 다양한 생각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직원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사무실에 앉아서 보낸다는 점이었다. 주민들 삶의 모양을 결정하는 신중한 결재를 위해서는 현장의 목소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에 현장 행정이라는 대원칙을 세웠다.
그 동안 단체장으로 일하면서 나름대로 몇 가지 원칙을 정해 구정을 이끌어왔다. 전시행정과 비리로 얼룩진 지방행정에서 탈피하겠다는 나 자신에 대한 다짐이기도 하다.
첫 번째 원칙은 직접 현장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며 주민들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장에는 서류에서 느낄 수 없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다. 저소득 주민을 위한 푸드마켓을 방문해서는 공급자 시각의 진열상태를 이용객 맞춤형으로 바로잡을 수 있었고, 경로당에서는 보고서류와는 달리 냉방설비가 너무 미흡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에어컨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지원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원칙은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반대하는 주민들이 있으면 그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번은 동 주민센터 입구에 들어선 순간 재개발에 대한 날 선 불만의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여유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주민들 의견을 처음부터 다시 들어보기로 했다. 진지한 토론이 이어지면서 격앙된 목소리는 사라졌고 대신 서로 한발씩 물러서서 재검토를 추진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세 번째 원칙은 형식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공무원 조직은 안정되고 체계적인데 반해 지나치게 형식을 따지는 측면이 있다. 공무원들은 일상적으로 주어진 일은 성실히 잘 수행하지만, 의미 있는 일에 적극적인 힘을 쏟는 집중력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형식적으로 설치된 부서들을 없애고, 일자리 정책과, 출산장려 팀 등 변화된 사회상을 반영한 조직을 신설했다. 연초 업무보고회에서도 형식적인 다과회를 없애고 주민과의 대화시간을 마련, 지역 곳곳의 현안을 해결하는데 집중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에서 “다른 벼슬은 구해도 좋으나 목민의 벼슬은 구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목민관이 잘못하면 그 폐해가 직접 백성들에게 닥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직은 엄중한 자리이다. 공직자는 주민들을 위한 뜻과 그 뜻을 이행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지행(知行)의 합일(合一) 이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것, 그것이 곧 지금의 지방행정이 가야 할 길이다. 단체장의 큰 권한에 걸맞게 책임을 다하는 공직자가 되리라 새삼 다짐한다.
이제학 서울 양천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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