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위암 수술 후 보조항암화학요법이 암 재발을 줄인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보조항암화학요법은 암 재발을 막기 위해 항암제를 투여하는 치료법이다.
방영주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지난 7일 미국 시카고 매코믹 플레이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47회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연례 학술대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다국가 임상 3상시험(연구명 CLASSIC) 중간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ASCO는 최신 치료법과 임상시험 결과를 공유하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학술대회로 이번 대회에는 3만여명의 암전문의와 제약관계자가 참석했다.
이번 중간 임상시험 결과는 ASCO에서 발표된 4,000여편의 연구결과 중에서 '베스트 논문(Best of ASCO)'으로 선정됐다.
방 교수는 임상시험 전문가로 오래 전부터 국내외에서 널리 알려졌다. 1992년 백혈병 치료제 '과립구콜로니자극인자(G-CSF)'의 1상 임상시험을 시작으로 국내 신약 1호인 '선플라', 국내 개발 항암제인 '켐토벨' 개발과 임상시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위암뿐만 아니라 폐암치료에서도 권위자로 지금까지 전 세계 책임연구자를 맡았던 신약만도 5건이다.
이번에 발표한 CLASSIC 임상시험은 방 교수가 다국적 제약사인 로슈와 사노피-아벤티스에 직접 제안해 이뤄진 것으로 한국을 비롯해 중국, 대만이 참여했다. 이 임상시험에는 100억원 정도가 투자됐다.
방 교수가 개발한 보조화학요법은 위암 2~3기 상태에서 수술을 받은 환자에게 로슈의 먹는 항암제 젤로다(성분명 카페시타빈)와 사노피-아벤티스의 엘록사틴(성분명 옥살리플라틴)을 함께 투여함으로써 암의 재발을 낮추자는 것이다. 방 교수는 두 약의 병용 처방을 '젤록스'라고 이름지었다.
젤로다와 엘록사틴은 각각 수술할 수 없는 진행성이나 전이성 위암 환자의 항암요법으로 사용되는 약이다. 방 교수가 이 두 약을 병용 투여하는 젤록스 요법을 고안해 말기 위암환자가 아닌 2~3기 위암환자의 재발 억제에 처음 사용한 셈이다.
이번 임상시험은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등 국내 21개 병원과 중국ㆍ대만의 16개 병원 등 모두 37개 병원에서 위암수술을 받은 뒤 보조 항암화학요법을 받지 않은 1,035명을 대상으로 젤록스 투여 그룹 520명과 젤록스 비(非) 투여 그룹 515명의 3년(평균 34.4개월) 무병 생존율(disease-free survival)과 비교하는 방식이었다.
젤록스 투여시점은 위암 수술 후 상처가 아물고 음식을 먹게 되는 시점이었으며, 약 투여기간은 6개월 정도였다. 그 결과, 젤록스의 3년 무병생존율은 74%로 아무 것도 투여하지 않은 환자군(60%)보다 생존율이 14% 포인트 더 높았다.
방 교수는 "위암 수술 후 보조항암요법의 효과는 최근까지도 과학적으로 분명하게 입증되지 않아 논란이 있었다"며 "1,000명 이상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이번 임상시험이 위암의 새로운 치료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번 임상시험 대상 환자를 2~3기로 한정한 것은 1기의 경우 완치율이 90%를 넘어서 이 보조항암요법을 굳이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번 임상시험의 공동 연구책임자인 노성훈 세브란스병원 외과 교수는 "이번 연구는 외과 전문의와 종양내과 전문의 간의 협력으로 이뤄진 다학제적 치료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며 "앞으로 한국인에게 가장 많이 생기는 위암의 치료와 연구를 촉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바이오시밀러(복제약) 전문 국내 제약사인 셀트리온이 한국기업으로는 처음으로 ASCO 전시관에 홍보 부스를 차렸다. 셀트리온은 ASCO가 열리는 4~8일 닷새간 시카고 매코믹 플레이스 컨벤션센터에 고대 그리스 신전을 본떠 만든 홍보 부스를 세워 화이자나 노바티스, GSK, BMS, 머크, 로슈 등 세계적 제약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 곳을 찾은 국내 의료진과 제약업계 관계자들은 "다국적 제약사 일색인 ASCO 학회장에 한국 제약사가 부스를 마련한 것만으로도 반갑다"고 입을 모았다.
시카고=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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