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글라스 끼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니 아무것도 안 보이더라구요. 중심을 못 잡아서 혼났어요. 하지만 늘 완벽한 모습만 보여 주려 애쓰는 고전발레만 하다가 이런 작업을 하니까 너무 재미있어요. 때로는 실수도 하고, 그게 익숙한 제 모습이거든요.”
한국 발레리노 1세대로 지금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인 김용걸(38)씨가 무대 위에서 자발적으로 망가졌다. 하지만 관객의 기립박수가 터졌고 공연을 막 끝낸 김씨도 상기된 모습이었다. 11일 서울 동숭동 한국공연예술센터 열린 ‘솔로이스트’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한 ‘그 무엇을 위하여…’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솔리스트였던 그는 현대무용가 김보람씨의 안무로 파격적 동작을 선보였다. 무용수의 동작에만 집중하게 하고 싶다는 안무가의 제안에 따라 선글라스를 썼다. 검은 양복을 입고 객석에서 등장한 그는 관객들을 관찰하며 거닐고, 깜짝 등장한 김보람씨와 커피를 나눴다. 무용수과 관객의 관계를 역전시킨 셈이다.
라벨의 ‘볼레로’를 배경으로 정통 발레 동작에 막춤과 현대무용 동작을 계속 섞었다. 음악이 고조되면서 조명이 갑자기 좁게 떨어지자 당황해 제자리를 찾는 상황도 연출했다. 공연 내내 객석에서 폭소가 터진 이유다. 그는 왜 이런 작업을 할까.
“파리오페라발레단의 고전발레 레퍼토리는 30~40% 정도밖에 안 되더라구요. 나머지는 영감을 주는 독특한 안무가들과 하는 창작이에요. 고전발레는 원래 귀족예술이어서 무용수의 운신의 폭이 굉장히 좁아요. 하지만 기본기가 일정 수준에 오른 무용수의 재능을 고전발레에만 쓰기는 아깝죠.”
프랑스 파리에서 보낸 9년의 시간을 단 20분의 솔로 공연에 담았다. 이를 위해 그는 3개월 동안 일주일에 3일, 하루 3시간 이상씩 연습했다. 피루엣(한 발을 축으로 팽이처럼 도는 동작)에서는 땀이 스프링클러처럼 튀었다. 마지막 공중을 향해 돌면서 몸을 날리며 조명이 꺼졌고 기립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조명이 다시 켜진 후에도 그는 한참을 일어나지 못한 채 숨을 골랐다.
“예상 불가능한 춤을 추는 데서 오는 해방감? 예상 가능한 고전발레를 출 때와는 긴장감 자체가 다르지만 그래도 관객들과의 교감이 좋고 재미있어요.”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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