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의 가슴 아픈 일상을 담아낸 독립영화 '무산일기'(감독 박정범)가 지난달 29일 1만 관객을 넘어서며 흥행 순항 중이다. 12일까지 전국에서 1만550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이 이 영화를 봤다. 100만명이 관람해도 흥행작이라 부르기 어려운 극장가의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고작~" 소리가 나오겠지만, 1만명은 독립영화계에서 흥행 여부를 가르는 바로미터다.
제작비 8,000만원인 저예산영화 '무산일기'는 1만명 돌파로 손익분기점(관객 8,000명 가량)도 훌쩍 뛰어넘었다. '무산일기' 배급사 진진의 김난숙 대표는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그린 영화로 4월 14일 전국 2곳에서만 개봉한 것을 고려하면 참 대단한 흥행 성적"이라고 자평했다.
'무산일기'는 세계 최대 독립영화 축제인 로테르담국제영화제의 대상(타이거상)을 비롯해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11개의 상을 받아 누적 상금 액수만 2억여원이다. 박 감독이 "술 한잔 사라"는 성화에 시달린다는 말이 돌 정도로 작품성과 함께 금전적으로도 남부럽지 않은 성공을 거둔 셈이다. 잘 만든 독립영화 한 편, 열 상업영화 부럽지 않음을 '무산일기'는 잘 보여준다.
올해 상반기 독립영화들의 기세가 대단하다. '무산일기'를 비롯한 패기 넘치는 수작들이 잇따라 개봉해 관객들을 불러모으며 영화계에 활력을 제공하고 있다는 평가다.
1만명 고지 돌파는 '무산일기'뿐이 아니다. 젊은 남녀의 아물지 않은 사랑의 상처를 다룬 영화 '혜화, 동'(감독 민용근)도 1만766명을 기록했다. '파수꾼'(감독 윤성현)은 1만9,817명이나 들며 흥행 꿀맛을 봤다. 두 영화는 개봉 전부터 높은 완성도로 호평을 받은 작품들로, 흥행과는 무관하다 곧잘 여겨지는 독립영화도 상업적 성공이 가능함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상반기에만 독립영화 세 편이 꿈의 숫자라는 1만 관객을 넘어선 것은 이례적이다. 충성도 높은 관객 동원이 가능한 종교 영화를 제외하면 지난해엔 열성 팬을 거느린 김종관 감독의 '조금만 더 가까이'(1만1,776명) 정도가 꿈의 숫자를 거머쥐었다. 영화계 일각에서는 "2009년 '워낭소리' '똥파리' '낮술'의 성공에 이어 제2의 독립영화 붐이 일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몇몇 작품의 흥행 성공 외에도 올해 독립영화는 양적, 질적으로 괄목할 성과를 내고 있다. 무엇보다 상차림이 풍성하다. 5ㆍ18 민주화운동의 현재를 렌즈에 담은 '오월愛'와 게이 네 명의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종로의 기적',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가족의 부침을 담아낸 '굿바이 보이' 등 수작 독립영화들이 잇따라 관객과 만났다.
만듦새도 예전보다 좋아졌다는 평가다. 독립영화 하면 떠오르는 조악한 화면이나 음향은 이젠 옛일이 됐다. 영화평론가 전찬일(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씨는 "요즘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10년 가까이 영화를 준비해 왔다. 실패를 경험하며 다진 기본기가 그들의 힘"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성과의 밑바탕은 제작 주체와 소재의 다양화에서 찾을 수 있다. 영화를 사회 변혁 운동의 도구로 삼았던 1세대 독립영화들과 달리, 최근의 독립영화는 성장담('파수꾼')을 그리거나 개인의 내면적 상처('혜화, 동' '조금만 더 가까이')를 묘사하는 등 소재를 다각도로 넓히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영화 제작의 문턱이 낮아진 점도 독립영화의 다양화를 가능하게 한 힘이다. 김난숙 대표는 "'똥파리'의 성공 이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저예산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늘어났다.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끌어내니 높은 완성도로 이어지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