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인터뷰 중인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보통은 인터뷰를 끝내고 받는데, 그 날은 어린이집에서 온 전화라 양해를 구하고 받았다. 여간 해선 일과시간에 엄마들에게 전화하지 않는 걸 알기에 좀 불길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우유랑 호두가 간식으로 나왔는데 잘 안 먹어서 교사가 살펴봤더니 입 안이 헐었고 손바닥에 좁쌀만한 불긋불긋한 게 돋았단다. 교사는 요즘 수족구병이 유행하니 병원에 가보라 했다. 시어머니가 부랴부랴 아이를 데리고 소아과를 찾았고, 역시 진단은 수족구병이었다.
시어머니와 통화를 마치고 기억을 더듬어봤다. 수족구병 예방접종을 했나 하고. 아차, 안 했다. 그런데, 당연하다. 수족구병은 백신이 없으니까. 우리 아이가 걸리고 나니 도대체 과학자들은 왜 수족구병 백신을 안 만들었을까 의문이 생겼다.
이유는 수족구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여러 가지이기 때문이다. 수두처럼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한 가지인 경우 한 번 그 병을 앓고 나면 웬만해선 다시 걸리지 않는다. 그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항체가 이미 몸 안에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여러 종류인 수족구병은 걸린 아이가 또 걸릴 수 있다. 한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있어도 다른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무방비 상태라서다.
백신은 병을 일으키는 원인균의 독성을 약하게 만든 약이다. 결국 수족구병 백신은 여러 가지 바이러스들 각각을 모두 일일이 약화시켜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만큼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원인균이 여럿인 병 중 현재 백신이 나와 있는 게 있다. 소아마비와 로타바이러스감염증, 폐구균성 폐렴 등이다. 소아마비 백신은 세 가지, 로타바이러스 백신은 다섯 가지, 두 종류인 폐구균 백신은 각각 열 가지와 열 세 가지 원인균을 예방한다. 예를 들어 폐구균 '13가 백신'을 맞으면 열 세 가지 원인균에 대한 항체가 생기는 것이다.
수족구가 다가(多價)백신이 이미 개발된 이들 병과 다른 건 치명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하정훈 하정훈소아과원장은 "손 씻기만으로도 예방할 수 있는 수족구병의 백신을 굳이 수천억원 들여 개발하려는 제약사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아이는 사나흘 앓다 나았지만 내겐 미안한 마음이 남았다. 얼마 전 아이가 밥을 먹다 입 안이 아프다며 칭얼대길래 잘못해서 이에 씹힌 줄 알고 무심코 넘겼다. 그때 입 안이며 손발을 세심히 살펴줬으면 수족구병을 좀더 빨리 알아챌 수 있지 않았을까 해서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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