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는 비를 맞으면서도 팬들은 찡그리기는커녕 설렘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태극기를 온몸에 두르고, ‘샤이니’ 글귀가 알록달록하게 새겨진 피켓을 들고 있는 유럽의 젊은이들이 눈에 띄었다. 나이 지긋해 보이는 중년신사도 ‘소녀시대’라고 적힌 하얀 티셔츠를 입고 젊은이들 대열에 섞여 있었다. 10일(현지 시간) 오후 SM엔터테인먼트의 ‘SM타운 라이브 월드 투어 인 파리’가 열린 프랑스 파리의 유명한 공연장 르제니스드파리 앞은 한국 아이돌 가수를 좋아하는 유럽 팬들의 집결지였다.
들뜬 모습 팬들 3시간여 함성
공연에 앞서 공연장 근처 빌레트공원에서는 한국 가수들의 노래와 춤으로 경연대회가 벌어졌다. 태연의 ‘만약에’를 불러 1등을 차지한 엘로디(21)는 상품으로 ‘동방신기’ CD를 받고 몹시 기뻐했다. 엘로디와 친구들은 11일 티켓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쉬운 마음에 10일 플래시몹 행사에 참여한 것이다. 입석표를 가졌다는 그들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음날 새벽 5시부터 줄 서서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가요와 드라마를 즐긴 지는 5년째라는 세바시티앙(22)과 지슬랑(22)은 파리의 한국식품점에서 구입한 한국 캔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왔다는 스웨덴 팬들도 보였다. 손에는 가수들의 얼굴이 있는 새겨진 부채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인터넷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던 한국 가수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핀란드 독일 이태리 영국 등 유럽 각지에서 팬들이 모여드는 모습을 보며 유럽에 부는 한류 열풍을 실감할 수 있었다.
몰려든 관객들로 입장이 늦어지면서 공연은 시작 시간인 오후 7시보다 30분 정도 지체됐다. f(x)를 시작으로 ‘소녀시대’ ‘샤이니’ 등이 무대에 오르자 감동받은 일부 팬들이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도 보였다. 가수들이 어설픈 프랑스어로 자기 소개를 할 때마다 떠나갈 듯한 함성이 울러 펴졌다. 유럽 각지에서 온 팬들은 한국말로 노래를 따라 부르고 함께 춤을 추며 축제를 즐겼다. 3시간을 조금 넘긴 공연 동안 어느 한순간 함성이 옅어진 적이 없었다.
“K팝 가수 좋아요”가 “한국 알고 싶어요”로 이어져
한국 가수들에 대한 사랑은 한국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이날 공연이 끝난 직후 “대단한 공연이었다”며 감격한 아나이스(21)는 “‘소녀시대’ 동영상을 우연히 접하고 한눈에 반했다”고 말했다. 원래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는 그는 “예전에는 일본과 중국에 관심이 컸는데 요즘에는 한국이라면 무조건 좋다”고 했다. 올 여름 파리에 있는 한국문화원에서 한국어를 배울 계획도 가지고 있는 아나이스처럼 한글과 한국 문화를 배우고자 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파리에 있는 동양언어문화대학인 이날코(Inalco)의 한국어과는 최근 2, 3년 간 매년 30%씩 학생들이 늘고 있다.
불과 2, 3년 전만 하더라도 파리의 한류는 아시아인들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러던 것이 1년쯤 전부터 현지 젊은이들 사이로 퍼져 가고 있다. 고교생인 딸아이에게 한국 가수 등을 묻는 프랑스 친구들이 늘어났는데 한국 아이돌 춤을 따라하며 더욱 친해졌다. 한류는 또 이곳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있는 한인 자녀들에게도 고국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한글을 익히게 하는 긍정적 효과도 가져왔다.
한류는 8년 전부터 형성돼 프랑스에는 현재 10만명의 팬들이 있다. 프랑스에는 아이돌 가수가 없어 젊은이들은 주로 미국 노래를 들어 왔다. 하지만 최근 한국 아이돌 가수들의 뛰어난 춤과 노래, 그리고 화려한 외모가 프랑스 젊은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만 마니아층 문화로 형성돼 있다는 인식도 있지만 공연장에서 만난 스웨덴 팬들은 “자국에서도 한류가 발전하고 있다”며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각 나라로 확산될 것”이라고 말해 한류에 대한 기대를 밝게 했다.
※박언영씨는 1989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8대에서 불문학 박사 과정을 이수하고 20년째 파리에 머물고 있다. ‘파리아줌마’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프랑스 소식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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