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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국제아카데미 개설한 김승준 9단 "외국인 전용교실 하나도 없다면 바둑 최강 한국에 안 어울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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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국제아카데미 개설한 김승준 9단 "외국인 전용교실 하나도 없다면 바둑 최강 한국에 안 어울려요"

입력
2011.06.10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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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기사 김승준 9단(38)이 요즘 외국 젊은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느라 무척 바쁘다. 매일 오전 11시에 블래키 국제바둑아카데미(Blackie's International Baduk Academy)에 나가 학생들에게 전날 내준 숙제 검사부터 시작해 이론 강의, 실전 연습을 지도한다. 이어 오후에는 자체 리그전 및 프로들의 대국 해설 등으로 밤 10시까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블래키 국제바둑아카데미는 김승준이 올 초 시작한 외국인 바둑 교실이다. 바둑을 배우기 위해 한국을 찾는 외국 젊은이들이 꾸준히 늘고 있지만 국내에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교육시설은 명지대 바둑학과 정도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마강자 이기봉씨(아마 7단)가 운영하던 국제바둑연구실(International Baduk Academy)이나 강원도 횡성의 킹스필드바둑센터 등이 있었지만 모두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상태다.

사실 김승준이 외국인을 위한 바둑 아마데미를 시작하게 된 것도 국제바둑연구실이 문을 닫은 것과 관련이 있다. 작년 말께 국제바둑연구실이 갑자기 문을 닫게 되자 당장 고국으로 돌아갈 입장이 안 되는 수강생들이 김승준을 찾아와 도움을 청한 것. 평소 외국인 바둑 유학생들과 친하게 지냈던 김승준이 이들을 한 달 정도 데리고 있으면서 숙식 편의 등을 제공하다가 "이번 기회에 내가 한 번 외국인을 위한 바둑교실을 운영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 바둑 보급에도 관심 있던 그는 바둑 최강국인 한국에 외국인 전용 바둑 교실이 하나도 없게 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그래서 절친한 사이인 헝가리 출신 여자 프로 기사 코세기 디아나(28) 초단과 함께 블래키 국제바둑아카데미를 개설, 운영키로 결정했다. 바둑 교실 이름인 블래키는 김승준이 수 년전 루마니아에 바둑 여행을 갔을 때 현지 바둑팬이 지어준 애칭으로, 흑기사(black knight)라는 별명과 아주 잘 어울린다.

그동안 수강생이 이스라엘 출신의 조나단(20)과 독일의 마크(24) 둘 뿐이었지만 지난 주에 캐나다에서 세바스찬(23)과 맥심(18)이 합류했고 다음 주에 캐나다에서 두 명이 더 올 예정이다. 학생들의 기력은 아마 3단에서 5단 정도. 이들의 목표는 당연히 지금보다 바둑이 좀더 강해지는 것이다. 특히 조나단이나 마크는 장차 프로에 입문하거나 자기 나라로 돌아가 뭔가 바둑 일을 해 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제 시작인 만큼 아카데미 규모는 그리 크게 생각지 않고 있다. 일단 10명 정도가 목표다. 대학교와 달리 한 학기 단위가 아니라 각자 원하는 기간 동안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어 방학을 이용한 학생들의 참여가 많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강료는 월 8백 유로(약 120만원). 바둑계 시세로 보면 그리 싼 편이 아니지만 아직은 수강생이 많지 않아 사범 인건비나 숙소 운영비 등 원가도 제대로 충당이 안 된다. "애당초 돈을 벌려는 게 아니라 외국인들에게 한국바둑을 좀더 깊이 알리려는 뜻에서 시작한 것이므로 현상유지만 하면 대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달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계아마마바둑선수권대회에 김승준 사범이 직접 참석해 선수들에게 홍보 책자를 돌렸고 다음 달 프랑스에서 열리는 유럽바둑콩그레스나 미국바둑콩그레스에서도 홍보를 펼칠 계획이다. 물론 운영중인 블로그(biba2011.blogspot.com)도 중요 홍보 수단이다.

아카데미 수강생들에게는 숙식이 제공된다.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아카데미에서 5분 거리에 기숙사가 있다. 김사범 자택도 그 근처다. "수강생이 몇 명 되지 않는데도 무척 바빠요." 세계 바둑 최강국인 한국에 외국인을 위한 바둑 교실이 하나쯤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품이 너무 많이 든다고 한다.

외국 학생 교육에서 흔히 가장 어려운 점으로 꼽는 언어 문제는 디아나가 있어서 별 어려움이 없지만 정작 문제는 방과 후 학생 관리. 외국인 학생들은 한국에 연고가 전혀 없기 때문에 일과 시간 외에도 이들을 계속 돌봐줘야 하는 까닭이다. 방과 후나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학생들과 농구 축구 등 운동을 하거나 하이킹을 함께 가는 등 1인 다역을 맡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거의 매일 학생들과 씨름 하느라 한국기원에도 시합이 있을 때만 잠깐 나오는 정도라고 한다.

블래키 바둑아카데미 원장 김승준은 1988년 입단, 1994년에 국기전에서 준우승 했고 그 해 바둑문화상 신예기사상을 수상했다. 군 복무 후 정상권에서는 조금 멀어졌지만 1996년 삼성화재 4강에 오르는 등 국내외 기전 본선에서 꾸준히 활약했다. 2005년 9단으로 승단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제패한 남자바둑대표팀 코치를 맡았고 올해 성적이 22승 7패로 현재 다승 4위를 달리고 있다. 사범을 맡고 있는 코세기 디아나는 헝가리 출신으로 2005년 명지대에 바둑 유학을 왔다가 한국기원으로부터 뛰어난 바둑 실력을 인정받아 2008년 특별 입단했다.

박영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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