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읽고 나면 대략의 줄거리마저 잘 생각이 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어떤 책은 무의식에 남아 현실에서 상황에 닥쳤을 때, 직관으로 되살아난다. 이렇게 직관으로 다시 살아나는 책은 두고두고 개인의 판단과 선택에 도움을 준다.
나에게도 이처럼 직관으로 살아나 판단에 영향을 주는 책이 있는데, 바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대기를 다룬 역사소설 '대망'이다. 가장 큰 이유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 주인공 세 명이 모두 영웅적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대부분 역사 소설은 특정 주인공 혹은 그를 추종하는 집단만을 우상화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세 주인공 모두가 자신의 상황에 따라 때로는 악역을 맡을 수 밖에 없는 당위성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같은 구성이 마음에 든다. 책을 읽으며 상황별로 인물의 입장에서 사건을 분석해 보고 이를 다시 조합해 곱씹다 보면 입체적인 상황분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20대 초반 대학 시절이었다. 그 후로 7~8번 이상 반복해서 읽고 사무실에 가까이 두는 이유는 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때때로 느끼는 절실한 입체적 시각 때문이다. 경쟁 회사의 입장에서 주어진 상황을 생각해보고 이에 대비한 대책을 마련할 때면 '대망을 읽으면서 넓힌 시야와 직관이 도움을 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긴박한 순간을 묘사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문구도 가슴에 와 닿는다."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걷는 것과 같다. 승리만 알고 패배를 모르면 해(害)가 자기 몸에 미친다", "미치지 못하는 것은 지나친 것보다 낫다. 풀잎 위의 이슬도 무거워지면 떨어지기 마련이다" 등이 그렇다.
이런 문구들은 인생을 살다 보면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또 최고경영자(CEO)로서 직원과 동료 기업인을 대할 때의 마음 가짐을 새롭게 해 주고 있다.
역사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이처럼 깊고, 다양한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작가의 소설 중에서는 최인호씨의 '제4제국'을 추천하고 싶다. 그의 역사물들을 읽다 보면 소설 자체로서의 재미뿐 아니라 오래된 기록물을 취재하고 그 안에서 소설적 모티브를 찾아낸 작가의 엄청난 노력에 감탄하게 된다.
박동훈 폭스바겐 코리아 사장 (한국수입차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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