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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분노하라' 老레지스탕스의 외침, “분노하라, 평화적으로 봉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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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분노하라' 老레지스탕스의 외침, “분노하라, 평화적으로 봉기하라!”

입력
2011.06.10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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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스테판 에셀 지음·임희근 옮김/돌베개 발행·88쪽·6,000원

"세상을 하직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아흔셋의 노인이 분노의 힘으로 한 평생을 살았다고 말한다면 한참 뒤틀렸거나 세상과 끝없이 불화한 고집불통 늙은이를 떠올릴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분노가 마땅히 "분노할 일에 분노하는 것"이라면 절로 고개가 숙여질 것이다.

레지스탕스 출신 노(老)투사가 젊은 세대에 고하는 절절한 외침이 담긴 <분노하라> 는 지난해 10월 초판이 나온 뒤 7개월 만에 200만부가 팔려나가며 프랑스 사회에 분노 신드롬을 일으켰다. 분노할 일 투성이면서도 분노란 모름지기 다스리고 삭여야 할 불편한 감정으로 치부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젊은이들이여, 분노하라"는 고언이 자칫 불온한 선동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르몽드는 '레지스탕스, 현재를 감전시키다'라는 제목의 서평 기사에서 "현재의 우리들이 적절히 포착해 이용할 대상으로서, 전달의 몸짓으로서 더욱더 관심을 모으는 책"이라고 썼다.

유대계 독일인 태생인 저자 스테판 에셀은 7세 때 부모를 따라 프랑스로 이주했고 스무 살 때 프랑스에 귀화했다. 그는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만난 선배 장 폴 사르트르에게서 참여의 가치를 배웠고, 헤겔에 이끌려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드골이 이끄는 자유프랑스에 가담해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고, 해방 이후엔 외교관이 돼 유엔에서 일하며 1948년 세계인권선언 성안을 주도했다. 말하자면 <분노하라> 에 담긴 분노와 참여, 인권, 비폭력 등은 그의 전 생애에 걸쳐 벼려지고 응축된 화두인 셈이다.

저자는 세상이 너무 복잡해져 분노의 대상을 찾기 힘든 젊은 세대의 고충을 이해하면서도 "이런 세상에도 참아 낼 수 없는 일들은 있고, 그것이 무슨 일인지 알려면 제대로 들여다보고 제대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게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인간을 이루는 기본 요소인 분노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결과인 참여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에셀 사상의 또 다른 축은 비폭력. 물론 팔레스타인처럼 저항으로서의 폭력은 "이해할 수 있고, 당연할 수도 있지만 용납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고 말한다. 그가 역설하는 비폭력은 "속수무책으로 따귀 때리는 자에게 뺨이나 내밀어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정복하고 타인들의 폭력 성향을 정복하는 일"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오로지 대량소비, 약자에 대한 멸시, 문화에 대한 경시, 일반화한 망각증,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지나친 경쟁만을 앞날의 지평으로 제시하는 대중 언론매체에 맞서는 진정한 평화적 봉기"에 나설 것을 호소하는 저자는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은 창조다!"

저자 인터뷰와 추천사 등을 빼면 본문은 30쪽에 불과하다. 죽비처럼 정수리에 내리꽂히는 문장들에서 손끝까지 얼어붙을 듯한 서늘함이 느껴지지만 가슴은 서서히 뜨거워진다. 책장을 덮는 순간 심장이 벌떡벌떡 뛰는 걸 느낀 경험은 참 오랜만이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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