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시라크(78) 전 프랑스 대통령이 단단히 뿔이 났다. 그는 다음주 출간될 두 번째 자서전에서 니콜라 사르코지 현 대통령을 일컬어 "참을성이 없고, 무례하며 배신을 밥먹듯 하는 문제아"로 혹평했다. 심지어 "프랑스인답지 못하다"는 원색적인 비난도 쏟아냈다.
시라크 전 대통령은 2007년 정계에서 은퇴한 이후 사르코지 대통령에 대한 공개적 언급을 삼가왔다. 첫 번째 자서전(2009)에서도 유년시절부터 파리시장 시절까지의 정치 인생을 담담히 서술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시라크는 왜 이제 와서 사르코지 때리기에 나선 것일까.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9일 "사르코지에 대한 배신감과 내년 대선을 겨냥한 성격이 짙다"고 분석했다. 사실 시라크와 사르코지의 관계는 썩 좋지 않았다. 시라크가 재임 중 자신의 후계자로 사르코지 대신 도미니크 드 빌팽 전 총리를 낙점했기 때문.
시라크는 파리시장 재직(1977~95) 당시 측근들을 위장 취업시켜 공금을 유용한 혐의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는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은 배후에 사르코지가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자서전에는 "공금 유용 사건은 특정 정치인의 야망을 충족하기 위한 복수심에서 비롯됐다"는 내용이 나온다. 다분히 사르코지를 의식한 발언이다.
그는 사르코지가 대통령감으로 부적합한 이유에 대해서도 소상히 밝혔다. 한마디로 사르코지는 극우성향에다 미국에 너무 경도돼 있어 프랑스인들의 비전을 공유할 만한 자질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시라크는 또 사르코지가 내무장관으로 일할 때 대통령의 사생활(가령 '시라크는 스모의 광팬이다' 등)을 공공연하게 노출해 자신을 조롱거리로 삼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반면 시라크는 프랑수아 올란드 전 사회당 당수를 '진정한 정치인'으로 추켜세웠다.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성폭행 파문으로 낙마한 상황에서 올란드 전 당수는 10개월 후 사르코지와 차기 대통령 자리를 다툴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다. 시라크는 "2004년 공공장소 내 히잡(무슬림 여성들이 쓰는 스카프) 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할 당시 올란드는 많은 비판을 무릅쓰고 협력하는 자세를 보여줬다"고 극찬했다. 사르코지의 인기가 뚝 떨어진 점을 감안해 정적인 올란드를 한껏 띄워준 것이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