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9일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가정상비약의 약국 외 판매를 허용하는 약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라는 업무지시 문서를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복지부가 이미 약국 외 판매 방안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히기는 했지만 진 장관의 오락가락 행보를 불신한 청와대가 문서 형태로 보다 직접적인 지시를 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의약품 재분류 등 국민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찾고 약사법 개선안을 국회에 제출하라"는 요지의 청와대 문서가 인편으로 진 장관에게 전달됐다.
현행 약사법상 의약품을 약국 외에서 팔기 위해서는 24시간 의약품 판매가 가능한 곳을 '특수장소'로 지정하고, 약사가 대리인을 정해 의약품을 판매해야 한다. 약사 동의 없이 약국 외에서 의약품을 팔려면, 현재 약국에서만 팔게 돼 있는 감기약 등을 재분류하고 약사법을 바꿔야 한다. 이는 복지부가 지난 3일 대책을 발표하면서 식약청 자문기구인 중앙약사심의위원회에 재분류를 의뢰하겠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때문에 청와대의 이날 지시는 새로운 방안을 제시한 것이기 보다, 직역단체에 휘둘리는 진 장관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 진 장관은 무소신과 오락가락 대응으로 문제를 더욱 꼬이게 해왔다. 지난 3일 복지부는 약사가 대리인을 지정해 약국 외에서 의약품을 판매하는 방안은 약사회가 수용하지 않아 추진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이후 여론의 비판과 청와대의 질책이 있자 진 장관은 8일 국회 답변에서 "약사법 개정 전이라도 현행 (의약품) 분류 틀 내에서 약국 외 판매 가능성과 방법 등을 논의하겠다"고 다시 말을 바꿨다.
앞서도 진 장관은 4월 14일 기자들에게 "일정한 교육을 받은 약 판매사가 마트에서 팔고 복약지도를 하는 일본 사례를 연구 중"이라고 했다가, 지난달 11일에는 "(약국 외에서) 팔아도 되는 것 아닌가 했었는데, 여기 와서(장관이 되어서) 얘기를 들어보니까 쉽게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고 부정적 입장으로 돌아섰다. 이어 27일 간담회에서는 "우리 국민들의 의약품 남용이 얼마나 심각하냐, 지금 추진 방향들이 옳은 것인가"라고 말했다. 진 장관의 발언들을 종합해 보면, 장관이 된 이후 점차 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에 부정적 견해를 갖게 됐음을 추론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가 약국 외 판매 반대라는 소신을 분명하게 밝히고 반대파를 설득하거나, 다른 대안을 적극 제안한 것도 아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김태현 사회정책국장은 "주무부처 수장이 말을 금세 뒤집었을 때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며 "당장의 비난을 피하고자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재추진 발언도 신뢰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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