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에 지쳐 입맛이 달아나기 쉬운 계절. 별난 음식이 아니더라도 독특한 상차림만으로도 입맛을 불러들일 수 있다. 다양한 디자인으로 음식에 멋을 더해주는 유럽 식기들을 활용해 늘 먹던 밥과 국, 반찬에 색다른 옷을 입혀보자.
2000년대 초반에는 꽃 나비 등이 그려진 포트메리온(영국), 웨지우드(영국) 브랜드가 인기를 끌었다면 최근에는 자연스럽게 손으로 빚어 만든 듯한 느낌을 주는 아사(독일), 덴비(영국), 로스트란드(스웨덴) 등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각광 받고 있다. 수입생활용품업체 쉬즈리빙의 최유리 대표는 "예전에는 그릇을 살 때 무늬나 패턴, 무게 등을 따졌는데 요즘은 형태나 질감, 디자인이 독특한 그릇을 많이 찾는다"며 "무늬가 화려한 그릇이 장식용으로 좋다면, 디자인이 아름다운 제품은 음식을 더 돋보이게 만들어준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그릇들, 언뜻 보면 우리 밥상에 어울리지 않는다. 샐러드와 파스타, 스테이크 등 외국 음식에 맞춰 만들어져 양념이 많은 한식을 담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밥, 국그릇이 없고 반찬 담을 작은 접시들도 많지 않지만 요령이 생기면 우리 음식과 서양식을 모두 담을 수 있어 활용도가 두 배가 된다"고 말했다. 최 대표와 허지혜 푸드 스타일리스트의 도움을 받아 유럽 그릇으로 한식 차리는 법을 알아봤다.
넓적한 받침용 접시→나물 구절판
최근 유행하는 유럽 식기들은 한국 도자기와 닮은 구석이 있다. 부드러운 곡선에 색감과 질감이 튀지 않고 자연스럽다. 그래서 한식과도 잘 어울린다. 커다란 스테이크를 놓거나 그릇 밑받침용으로도 쓰는 큰 접시에 각종 나물을 아기자기하게 얹으면 보기에도 좋고 그릇 수를 줄여 깔끔한 느낌을 줄 수 있다. 허씨는 "칸막이만 없는 구절판으로 생각하면 된다"며 "넓은 그릇 안을 가득 채우지 말고 미나리 표고버섯 등 다양한 나물을 오밀조밀 담으면 훨씬 정갈하고 맛있어 보인다"고 조언했다. 색상이 어두운 그릇에는 채도가 밝은 나물과 연어 등 생선이 어울린다. 또 보라나 푸른색 계열은 자칫 식욕을 저하시킬 수 있는데 이런 그릇에는 붉은색을 띠는 음식을 담는 것이 좋다.
파스타볼→볶음밥과 잡채
그릇 주위에 넓은 테가 달린 파스타 볼은 잘못 쓰면 식탁 자리만 차지할 수 있다. 여기에 볶음밥이나 잡채를 봉긋하게 담으면 색다른 분위기를 낼 수 있다. 그릇의 넓은 테가 음식을 장식해 손이 많이 가지 않은 음식도 정성스러워 보이는 효과가 난다. 테 끝이 안쪽으로 모아진 그릇을 사용하면 밥알이 흐트러지기 쉬운 볶음밥을 떠먹기에 편하다. 잡채처럼 당면과 각종 야채를 섞은 음식도 파스타 볼에 담으면 색감이 더 살아난다.
사각 스테이크용 접시→보쌈과 생선구이
네모 반듯한 스테이크 접시에는 두부김치나 보쌈, 생선구이가 잘 어울린다. 정사각형 접시에 가지런히 자른 두부와 붉은 김치를 올리면 소박하면서도 먹음직스런 느낌을 준다. 갈치구이 등 토막 낸 생선을 올려도 좋다. 직사각형 접시에는 생선을 통째 구워 길게 올린다. 머리와 꼬리가 그릇 밖으로 튀어나가지 않아 훨씬 깔끔해 보인다. 여백에 레몬과 야채를 함께 곁들이면 좋다. 한식 상차림에는 밥공기와 국그릇, 뚝배기 등 둥근 그릇들이 많이 쓰이는데 이런 네모난 그릇을 군데군데 두면 식탁이 한결 산뜻해 보인다.
샐러드볼→냉면, 국수 등 면요리
둥근 샐러드볼은 면 요리에 알맞다. 신선한 야채나 과일을 넣어 보관하면 인테리어 효과가 나지만 한식 상차림에 쓸 때는 냉면과 국수 그릇으로 써도 손색이 없다. 특히 투명한 그릇은 둥그렇게 말아 담은 면에 고명을 살짝 얹은 것만으로도 시원한 느낌을 주어 입맛을 돋운다. 도자기 그릇에는 죽을 담으면 정성스럽게 보이고, 라면이나 찌개를 담으면 따뜻한 느낌이 배가 된다.
특수 용기도 쓰기 나름
고열에 견디는 오븐 용기는 열을 오래 지속시키기 때문에 한식 전골요리에 안성맞춤이다. 빵이나 피클 등을 담아내는 길쭉한 보트형볼에는 각종 쌈 야채와 당근, 가지, 오이, 고추 등을 5,6㎝ 길이로 잘라 촘촘히 꽂아주면 한층 세련된 분위기가 연출된다. 또 서너 개의 그릇을 겹쳐내는 것도 유럽 그릇을 제대로 활용하는 팁이다. 가령 유리 샐러드볼 아래에 거친 돌 표면의 접시를 받치면 수저 받침이 따로 필요 없다. 3단으로 된 케이크 스탠드는 보통 쿠키나 떡 등 다과를 낼 때 쓰는데, 그 밑에 다른 접시를 받쳐 밑접시에 야채를 담고 스탠드에 소스를 올려내면 별다른 조리과정 없이도 훌륭한 음식이 완성된다. 디저트용 작은 그릇들은 반찬접시로 쓰거나 팥빙수, 단팥죽을 담아내도 된다. 또 유리와 도자기를 섞어 활용하거나, 높이가 각기 다른 접시를 함께 쓰는 것만으로도 식탁이 더 풍성해지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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