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인에서 400가구 규모의 아파트 건설사업을 추진중인 A건설사는 최근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과정에서 은행과 마찰을 빚고 있다. 당초 약속과 달리 은행이 사업지 외에 추가 담보를 요구한 것. '더 내놓을 담보가 없다'고 호소해도, 은행은 '감독당국 지시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분양 일정이 코 앞인데 자금 문제가 풀리지 않아, 속이 타 들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부실 사업장에 국한됐던 PF사업 차질이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자금력 탄탄한 대기업까지 금융권에서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지고, 중견 업체의 사업장은 수익성과 관계없이 잇따라 중단되거나 사업권이 대기업 계열사로 넘어가고 있다. 국내 주택공급의 3분의2를 차지하는 민간 물량의 절반이 PF 방식인 것을 감안하면 2, 3년 뒤에는 공급물량 부족에 따른 또 다른 부동산 대란이 우려되고 있다.
부산 해운대에서 주택 사업을 진행중인 중견 B사는 모델하우스까지 짓고 분양을 며칠 앞둔 상황에서 거래 은행으로부터 PF 대출금 350억원의 상환 통지를 받았다. 다행히 여유 자금으로 막았으나, 예고도 없이 거액을 회수하는 바람에 분양 및 자금계획을 긴급 점검하는 소동을 빚었다.
목포에서 주택사업을 추진중인 한 시행사 관계자도 "대부분 은행이 PF대출 잔고를 종전의 3분의1 수준으로 낮췄다"며 "이름난 시공업체라 하더라도 신규 PF를 일으켜 사업을 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라고 전했다.
대그룹 계열 건설사도 PF 대출 때문에 사업 진행에 차질을 빚고 있다. 천안에서 주택개발사업을 추진하던 대형 C사는 거래은행이 지난달 말 만기가 돌아온 PF 대출(1,700여억원)에 대해 돌연 연장 불허방침을 통보해 회사 운영자금으로 급히 돌려 막았다. 이에 따라 연내 분양 예정이던 일정도 가늠하기 어려워졌다.
워크아웃 상태인 건설사의 경우는 사정이 더 딱하다. PF 신규대출이 사실상 불가능해 분양 대박이 확실한 알짜 사업장마저 대기업에 빼앗기고 있다. 부산 장전동에서 1,500억원 규모의 주택사업에 나섰던 D사는 워크아웃으로 자금줄이 막히면서 사업권을 대형 S건설사로 넘겨야 했다. 회사 관계자는 "최근 이 사업장의 분양에서 100% 청약이 이뤄졌다"며 "PF대출만 가능했다면 회사의 재무구조가 크게 좋아졌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또 다른 워크아웃 건설사인 E사도 파주 신도시의 사업장을 대형 건설사로 넘겨야 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사업성이 아닌 건설사 이름만 보고 돈을 빌려주는 우리나라 PF 관행에선 워크아웃 건설사가 PF를 받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보다 어려운 현실"이라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요즘처럼 PF사업이 '묻지마 식'으로 차질을 빚으면 2,3년 이후 주택시장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국건설산업연구원(건산연)에 따르면 2008년부터 최근 3년간의 주택분양 감소로 이들 주택의 입주가 시작되는 올해부터 2013년까지는 단기적으로 주택공급 부족 현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건산연은 올해 입주 물량이 전년 대비 34.4%, 내년에는 28.6%가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주택협회 관계자는 "가뜩이나 공급 여건이 좋지 않은데, PF 차질로 착공 주택이 예상보다 급감한다면 2,3년 후에는 주택 부족에 따른 시장 불안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 소장도 "PF 문제에 따른 민간 주택 공급의 위축은 결과적으로 주택수급불안으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민간 분야의 공급 부족에 대비해 공공부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상황이"이라고 덧붙였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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