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며 독립운동가인 권태응(1918~51) 선생은 ‘감자꽃’이란 동시로 유명하다. ‘자주 꽃 핀 건 가주 감자./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네 줄의 동시가 꽃과 열매의 색깔이 하나라는 자연의 불이(不二)를 가르쳐 줘서 좋다. 올해 은현리 텃밭에 감자를 심었다. 씨감자 심기가 늦었었다. 다른 감자밭과 달리 꽃이 늦어 걱정했는데 지난주부터 별 모양의 하얀 감자 꽃이 피어올라 ‘파보나 마나 하얀 감자’라는 기대에 즐거웠다. 함께 텃밭 농사를 짓는 분이 오셨기에 “감자 꽃이 피었습니다”라고 자랑삼아 인사를 하니 “꽃을 따야 겠지요”라고 되묻는다. 그분을 통해 감자 꽃은 필 때 잘라 줘야 열매가 굵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건 꽃으로 가는 영양분을 땅속 열매로 보내는 일이었다. 감자 꽃은 감자가 피우는 꽃이지만 사람을 위해 잘려 나가야 하는 슬픈 꽃이었다. 감자 꽃 따는 일에 손이 쉽게 나가지 않았다. 꽃을 꺾는 일이 죄인 것을 알기에 더욱 그랬다. 감자는 하지 무렵부터 수확을 한다. 하지가 가까워지고 있는데 꽃 타령만 하고 있을 수 없어 눈을 질끈 감고 꽃을 땄다. 딴 꽃은 버리기 아까워 작은 화병에 담아 놓았다. 감자 꽃 꽃말이 ‘당신을 따르겠습니다’다. 그러한 순종의 꽃이기에 더욱 미안하다. 내년에는 감자 꽃을 위한 감자밭 한 고랑쯤을 만들어야겠다.
시인ㆍ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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