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험의 리더들
국내 대형 생명보험사나 손해보험사가 회사마다 매년 수 천억 원의 이익을 지속적으로 거둘 정도로 안정적 수익구조를 확보했다고 해서, 그 최고경영자(CEO)도 안정을 지향하는 보수적 경영 철학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업계 순위 변동이 거의 없는 고요한 수면 아래에서도, 혁신을 위한 CEO들의 발놀림은 그 어느 때보다 부산하다.
삼성생명의 박근희 사장은 매주 한 차례씩 빠지지 않고 현장지원단을 찾고 있는 '현장경영 신봉자'다. 현안과 관련한 문제와 답은 언제나 현장에 있다는 게 지론. 최근에는 업계 1위 수성(守成)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박 사장은 최근 삼성생명 상장 1주년을 맞아 ▦은퇴시장 ▦부유층 시장 ▦해외 시장 등 3대 신규시장을 주요 공략 타깃으로 삼아 2015년까지 연평균 7~8%의 성장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신은철 대한생명 대표이사 부회장은 보수적인 보험업계에서는 이례적으로 공격적인 '속도경영'을 강조하는 인물. 보험업법 개정이나 자본시장 통합법 등 업계 지형 변화에 선제 대응해야 한다는 신념에서다. 이 때문에 2003년부터 8년간 대한생명의 CEO를 역임하면서, 회사를 확고한 업계 2위 회사로 발전시켰고 2009년 생보사로는 처음으로 베트남에 진출, 10여개 지점에서 4,000여명의 설계사를 고용해 계약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서울대 의대 교수를 지내다가, 외환위기 이후 비상상황에서 구원투수로 투입된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보험업의 미래를 한 발 앞서 내다보는 '비전(vision) 경영인'으로 통한다. 이미 회장 취임 다음해인 2001년에 10년 앞을 내다본 '비전 2010'을 선포하며 ▦고객선호도 ▦경영효율 ▦이익률 등의 성과지표를 향상시킨 점이 돋보인다. 최근에도 2015년까지 '고객 보장 넘버원 회사'가 되겠다는 취지의 '비전 2015'를 선포했다. 생보사가 고객의 상품 가입부터, 유지, 지급까지 장기적으로 일관되게 철저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손보업계 1위 회사를 이끌고 있는 지대섭 삼성화재 사장이 2008년 취임 후 지난 3년간 지속적으로 강조한 키워드는 '혁신'이다. 지 사장은 올해 초 직원들에게 "기존 성과에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해 나가자"며 지성무식(至誠無息ㆍ끝없이 지극한 정성)의 자세를 강조하기도 했다. 전체 임원을 모두 미국이나 유럽 등의 혁신 선진기업에 보내 견문을 넓히게 하고 회사 성과와 연관되는 구체적 실행방안을 스스로 수립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실시 중인 것도 이런 차원이다.
'32년 동부맨'인 김정남 동부화재 사장이 채택한 회사 슬로건은 '다이내믹 동부'다. 역동적인 기업 문화를 토양으로 상호소통과 자율경영 문화가 뿌리내리게 하자는 것. 지급여력 비율이 256%(지난해 9월말 기준)에 이를 정도로 탄탄한 체력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일구기 위해 변화와 혁신을 추진 중이다. 이런 노력이 인정받아 올해 다우존스가 선정한 지속가능경영 지수에서 2년 연속 보험업계 1위로 선정됐고, 지난해에는 한국표준협회 주관 한국서비스 대상에서 종합대상을 받기도 했다.
서태창 현대해상 사장의 경영 목표는 기본과 정도(正道)를 지키는 기업이다. 특히 보험은 고객의 평생을 보장하는 장기간(롱텀) 사업이기 때문에, 최고 서비스를 위해서는 보험회사도 장기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 서 사장이 내세운 중장기 전략인 '비전 HI 2015'에도 이런 철학이 담겨 있다. 2015년 매출 12조원과 순익 4,000억원 달성을 위해 ▦본업 경쟁력 강화 ▦경영 인프라 최적화 ▦고객가치 극대화 ▦신성장동력 기반 강화를 4대 전략으로 설정했다.
구자준 LIG손해보험 회장은 방위산업 분야 엔지니어를 거치며 문무(文武)를 겸비한 CEO. LG정밀 시절 호크미사일 국산화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한 미사일 전문가다. 26년을 방위산업 분야에서 일하다가 1999년 계열 분리와 함께 LG화재 부사장으로 선임돼 보험업에 입문했다. 구 회장은 오지 탐험을 즐기는 CEO로도 유명하다. 2001년 히말라야 K2 원정을 시작으로 남ㆍ북극점, 에베레스트, 빈슨매시프 등의 원정대장을 맡기도 했다. LIG손해보험이 방카슈랑스나 홈쇼핑 등 신규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이런 개척정신과 무관하지 않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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