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호쿠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이어진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사고까지, 올 들어 숨 돌릴 틈도 없이 일본을 엄습한 블랙스완들은 평소 재난 대비책을 잘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온 일본 정부조차 당황하게 만들었다. 특히 원전 사고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은 한 마디로 우왕좌왕 그 자체였다.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정부에게조차 허위 보고를 일삼았고, 정부는 이런 거짓말에 따라 대책을 내 놓았다 피해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더 키우는 우를 범했다.
이는 강 건너 불구경 할 일만은 아니다. 우리 정부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일이 벌어졌을 때를 대비한 ‘비상계획 프로그램’(Contingency Program) 등을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웃 나라의 재앙과 그 이후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자는 것이다.
사실 분단 국가인 우리나라에는 이미 1969년 국가비상기획위원회가 설치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전시나 사변 등 주로 군사ㆍ안보적 상황에 대비한 기구의 성격이 강했다. 그나마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서 국무총리 소속 중앙행정기관에서 행정안전부로 흡수 통합돼 사실상 폐지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국제 사회의 불확실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전엔 경험할 수 없었던 초대형 자연 재해 발발 가능성도 극대화한 상황이다. 그래서 단순히 안보나 군사적 측면에서 탈피, 다양한 비상 상황에 따른 국가 차원의 대비책과 이를 담당할 기구(가칭 블랙스완위원회)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삶을 위협할 수 있는 블랙스완이 나타났을 때를 대비하기 위한 ‘비상회의’ 등을 만들자는 것이다.
곧바로 거창한 조직을 꾸리는 것이 어렵다면 적어도 일본이 이번 사태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기록하고 분석, 이를 통해 무엇을 배울 지에 대한 백서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조언이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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