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일은 우리가 블랙스완
블랙스완은 드물지 않다. 예기치 않은, 전례 없는 사건이 돌연 등장해 세상을 이끌어 가는 일은 뜻밖에 자주 일어나고 있다. 문화 현상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매년 100만권이 넘는 신간이 나와도 그 중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은 수의 책이 전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미국 출판계를 사례의 하나로 꼽았다. 바로 이런 극단값의 세계가 있고, 그곳에서 블랙스완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영국 작가 조앤 K. 롤링이 쓴 '해리 포터'시리즈. 머글과 마법사, 현실과 마법의 세계라는 대립하면서 공존하는 흥미진진한 세계를 만들어낸 판타지 소설은 지금까지 일곱 권이 64개 언어로 번역돼 4억 부가 팔려나갔다. 워너브러더스가 제작한 일곱 편의 해리 포터 영화는 50억 달러 이상의 흥행수입을 올렸다. 해리 포터 시리즈가 1997년부터 2006년까지 올린 매출액은 우리 돈으로 308조원(소설, 영화, 캐릭터 판매액 포함). 같은 기간 한국의 반도체 수출 총액 231조 원의 1.3배 이상이다.
그러나 해리 포터 시리즈의 출발은 초라했다. 중고 타자기로 최종원고를 타이핑한 조앤 롤링은 원고를 복사할 돈이 없어 한 번 더 타이핑하는 수고를 감내해야 했다. 이 책을 쓰던 1993년 당시 이혼녀로 딸과 함께 지내던 그는 사회보장국으로부터 주당 140달러가 안 되는 주거 및 수입보조금을 받고 있었다. 이 책의 원고는 영국의 열두 개 출판사에서 거절당했다. 1997년 6월26일 블룸스베리 출판사에서 출간된 첫 권()은 500부를 찍었다. 책이 출간된 직후 런던의 한 서점에서 조앤이 직접 참여한 첫 낭송회에는 단 두 명의 독자만이 참여했다. 당시 저자를 포함해 어떤 사람도 훗날의 성공을 상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1997년 볼로냐 아동도서전에서 출간할 원고를 찾고 있던 미국의 스콜라스틱 출판사 편집 이사 아서 레빈은 이 책을 발견한 다음,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읽고 이 책의 판권을 확보하기로 마음먹는다. 첫 권이 발매된 지 불과 3일 후에 블룸스베리는 이 책의 미국 내 판권을 입찰에 붙였는데 레빈은 전례 없이 높인 가격인 10만5,000달러에 판권을 확보했다. 스콜라스틱이 원제인 '해리포터와 현자의 돌'의 느낌이 너무 무겁다는 이유로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로 바꿔서 1998년 8월 5만 부를 발행한 이후 이 책은 마법에 걸린 듯 팔려 나갔다. 이 사실이 전 세계에 알려지자 한국의 출판사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곱 권의 권당 선인세가 1만5,000달러나 돼, 모두 10만 달러가 넘는 금액을 한꺼번에 지불해야 하는 위험부담이 있었다. 국내 유수의 출판사들이 망설이고 있을 때 어린이 책을 펴낸 경험이 전혀 없는 문학수첩이 판권을 확보했다. 문학수첩이 1999년 11월에 3,000권을 발행하면서 2,000만 부의 해리 포터 신화가 시작되었다.
2009년 1월 개봉한 독립영화 '워낭소리'. 경북 봉화 산골의 노인 부부와 그들이 키우는 늙은 소의 마지막 몇 년간 생활을 카메라에 담아, 고향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며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워낭소리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비가 1억원 정도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서울에서 99만명, 전국적으로 292만명의 관객을 모으면서 19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제작비 대비 무려 190배의 흥행 수입을 올린 영화다.
그러나 워낭소리의 이런 성공은 과거 어떠한 자료로도 예측할 수 없었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이처럼 성공한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또 현직 대통령이 그 유명세에 직접 극장을 찾았을 정도로 한국영화계에 던지는 파급효과가 컸다. 제작자나 감독 조차도 이렇게 많은 관객을 모을 거라 예상 못했지만, 흥행에 성공한 후 성공요인을 분석하는 자료들이 쏟아졌다.
워낭소리의 이런 점들은 블랙스완의 3가지 특성과 딱 맞아 떨어진다. 첫째는 과거의 경험으로 그 가능성을 확인할 수 없는 예견 불가능성과 기대 영역 밖에 놓인 극단값. 둘째는 막대한 파급효과, 셋째는 사후 합리화다.
지난해부터 국내에서는 '슈퍼스타 K', '위대한 탄생' 등 오디션 광풍이 불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 1등을 차지한 허각과 백청강도 블랙스완의 예로 손색이 없다. 먼저 허각은 중졸 학력의 천장 환풍기 수리공으로 어렵게 성장했지만 지난해 슈퍼스타 K2에서 우승하며 가창력을 갖춘 가수로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백청강은 중국 옌볜 출신 조선족으로 집안 사정 때문에 아홉살때부터 혼자 살아오다 한국에서 부모를 만나겠다며 위대한 탄생에 도전, 우승을 차지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어려운 환경, 결코 빼어나다고 할 수 없는 외모에도 버리지 않았던 노래에 대한 꿈을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경쟁을 통해 이뤄내며 스타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묽遂?못했던 이들의 인기와 대중의 반응은 누구나 블랙스완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사정원기자 sj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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