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N의 경제뉴스프로그램 프로듀서인 스테파니 젠킨은 풀브라이트장학생으로 요르단에 머물렀고, 영국 주간지 주이시크로니클의 예루살렘특파원으로 일했던 중동통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1967년 국경을 근거로 평화협상을 해야 한다'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스테파니와 마찬가지로 유대인인 워싱턴타임스의 벤 번봄 기자가 끼어들었다. "한국은 어떤 입장이냐?" "미국의 중동정책이 딜레마에 빠졌다고 본다." "그게 아니라 한국인은 누구 편이냐고." 결국 "솔직히 한국인은 이-팔 문제에 관심이 없다. 의견을 갖기 앞서 잘 모른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한미언론교류프로그램 참가차 각자 상대국을 방문한 뒤 호놀룰루에서 모인 한국과 미국 기자들의 만남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러자 스테파니의 반응이 이랬다. "미국 국민의 한국에 대한 태도가 바로 그렇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나 핵무기가 미국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신경이 쓰이는 것이지 한반도에 대해 잘 모른다."
물론 정부 차원에서 보는 양국관계는 다르다. 특히 북한의 도발 이후 두 나라의 동맹결속은 "그 어느 때보다 굳건하다"는 이야기를 조 도노반 미 국무부 수석차관보를 비롯, 워싱턴에서 만난 관료들로부터 귀가 닳도록 들었다.
일반 국민의 인식은 어떨까. 1922년 설립된 미국 최고(最古) 싱크탱크기관인 시카고카운슬의 캐트린 카츠 연구원이 밝힌 미국 국민 2,600명 설문조사에 따르면, 주한미군의 장기주둔에 대한 지지율이 62%로 미국이 직접 전쟁을 벌인 아프가니스탄 주둔 지지보다 높고, 80%는 남북이 통일돼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미동맹을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조사 시점이 북한의 연평도 도발 직후인 점이 작용했지만, 미국인들이 중국의 군비확장을 상당한 위협으로 느끼는 심리도 엿보였다.
하지만 카츠는 "한미동맹에 대한 미국인의 지지는 미국산 소고기 반대 촛불시위 같은 일이 발생하면 순식간에 부정적으로 바뀔 수 있는 허약한 기반 위에 있다"고 말했다. 미국인이 한국에 대해 무지하다고 할 정도로 잘 모르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제1종교가 기독교라는 대답이 19%에 불과(불교가 50%)한 것은 그렇다 쳐도, 한국이 미국의 10위권 내 교역국이라는 사실을 아는 미국인은 29%에 불과했고, 40%는 한국이 민주주의국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미국인은 한국을 모른다"는 스테파니가 맞았다.
우리가 굳이 미국 국민에게 잘 알려지고 좋은 인상을 줘야 할 이유는 없다. 다만 국민여론에 따라 미 정부의 안보정책이 바뀐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필요하다. 지금 미 정부와 정치권이 아프간 철수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것도 극심한 재정난에 시달리면서 아프간미군을 유지해야 하느냐는 회의적 여론에서 비롯된다. 더 나은 살림살이를 원하는 국민과,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 앞에서 국방부가 강조하는 전략적 필요성은 충분치 않을 수 있다.
많은 관료, 전문가와의 만남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거꾸로 한국이 계속 미국과 동맹을 유지할 거냐고 물은 한 전문가의 전망이었다. 중국이 부상하고 미국은 군사개입을 축소하는 이 추세대로라면 한국은 다른 동맹관계를 고려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어느 때보다 굳건한 한미동맹"은 계속 움직이는 역학관계 위에 놓여있다. 정작 우리는 이처럼 역동적이고 다각적인 외교안보환경을 제대로 인식하고 대처하고 있는지 진심으로 궁금하고 의문스러웠다.
김희원 국제부 차장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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