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존재감'이란 방송 등에서 별다른 배역을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그 사람의 외모, 스타일 등으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사람 따위를 지칭하는 신조어다. 한 마디로 미쳐 버릴 것 같은 존재감, 즉 그 존재감이 뚜렷하거나 대단하다는 뜻이다.
원래 '미쳤다'는 단어는 심리학적으로 정신장애나 정신병에 걸렸음을 의미하는, 과히 좋지 않은 뜻과 어감을 가진 말이다. 즉, 그것은 때로는 '좋아서 미치겠다'에서처럼 좋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너 미쳤냐?'라던가, '미친 O'처럼 나쁜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이 '미친'이라는 나쁜(?) 수식어가 붙은 '미친 존재감'이라는 신조어는 좋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이는 이 칭호를 부여받은 사람들이 대부분 대중들이 선망하는 연기자라는 사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드라마 '추노'에서 천지호를 연기한 성동일처럼 드라마나 영화에서 멋진 모습과 탄탄한 연기력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누리꾼들에게 뚜렷하게 각인시킨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왜 대중은 그 의미가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감이 거칠기까지 한 '미친'이라는 단어를 존재감과 합쳐서 좋은 의미로 사용하는 것일까? 그것은 첫째로 언어사용에서조차 튀는 걸 선호하는 심리가 나타나서이다. 요즘의 한국사회는 평범하거나 평이한 것은 무시하는 반면, 좋든 나쁘든 간에 톡톡 튀거나 강렬한 느낌을 주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낳은 결과라고도 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해서든지 대중의 눈에 띄어야만 1등을 할 기회라도 잡을 수 있다는 강박관념이 만들어낸 건강하지 못한 사회현상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뚜렷한 존재감'이라는 표현은 문법상 정확하지만 그다지 튀는 표현은 아니다. 반면에 '미친 존재감'이라는 표현은 문법적으로도 맞지 않고 어감상으로도 좋지 않지만 매우 튀는 표현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럴 경우 대중은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최근 한국인들은 언어사용에서조차 최고를 양보하지 않으려 하면서, 다른 사람이 아예 경쟁을 꿈꾸지 못할 극단적인 용어를 선택하려 하는데, 예컨대 종결자라는 신조어는 더 이상 내 말에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대중의 경쟁심리에 잘 부합하는 신조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요즘 한국인들은 언어사용에서도 타인의 주목을 끌거나 타인을 제압할 수 있는 특이하거나 튀는 단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로, 대중의 마음속에 쌓인 감정이 언어사용에 영향을 주어서이다. 마음속에 화가 많이 난 사람은 비속어나 욕을 많이 사용하는 법이다. 비속어나 욕은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지만 나름대로 화를 밖으로 표출하는 효과는 있다. 그래서 마음속에 화가 많이 난 사람은 언어를 사용할 때 자신의 감정을 섞게 되므로, 자기도 모르게 거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거칠고 강한 어감을 가진 신조어가 유행하는 것은 그만큼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쌓인 감정, 특히 분노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나쁜 신조어라도 자꾸 사용하다보면 그것에 둔감해지므로 더 나쁜 신조어가 만들어지는 악순환에 빠져들 수 있다. 부디 한국사회가 하루라도 빨리 이런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게 되기를 바란다.
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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