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를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사고의 하나가 지진이다. 원전 부지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최고의 지진을 가정하여 설계한다. 물론 지진해일도 고려해 충분한 높이에 원자로 건물을 짓는다.
3월 11일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월등히 큰 규모 9.0 지진이 후쿠시마(福島) 원전 가까운 곳에서 발생, 높이 15m 해일이 원전 부지를 덮쳤다. 건물 2층까지 물에 잠겨 지하에 있던 기기와 전기 장치가 멈추고 전원 또한 상실되는, 설계 측면에서 상상하지 못한 사태가 발생했다.
후쿠시마 원전 1호기는 1971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원전 중 하나다. 1979년 스리마일 아일랜드 원전과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우리는 최적ㆍ최선으로 생각했던 설계조건을 넘어서는 중대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이후 사고 영향을 완화하고 대중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장치 보강이 이뤄졌다.
대표적인 것이 안전의 최후 보루라고 할 수 있는 격납 건물 내의 수소 폭발 가능성을 방지하고, 사고 때 혹독한 조건에서도 건물과 계통이 목표 성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중대 사고의 요건이 반영된 원전에는 수소가 발생하면 화학적으로 제거하거나 미리 태워버리는 장치 등이 설치돼 있지만, 후쿠시마 원전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
사고 직후 전문가들이 지적했듯이 우리나라 원전은 후쿠시마 원전과는 유형이 다르다. 우리는 가압경수로형(Pressurized Water Reactor)이고 후쿠시마 원전은 GE가 개발한 비등경수로형(Boiling Water Reactor)이다. BWR은 원자로에서 발생시킨 증기를 직접 터빈에 보내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인 반면, PWR은 중간에 증기 발생기를 두어 원자로 냉각재를 직접 터빈으로 보내지 않는 이중 구조다.
이 주요기기를 보호하는 구조물이 격납 건물이다. PWR에는 증기발생기가 추가적으로 포함되므로 격납 건물이 BWR에 비해 월등히 크다. 따라서 경제성에서는 PWR이 불리할 수 있지만, 격납 공간이 큰 만큼 사고 대처 능력도 크다. 우리나라 원전은 후쿠시마 원전보다 격납 건물 크기가 10배 정도 크다. 뿐만 아니라 중대 사고를 고려해 수소 점화장치, 낮은 농도에서 수소를 태워버리는 장치도 설치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설계에 고려한 재해의 정도를 넘어선 자연현상 때문에 발생했다. 전 세계 원전 보유 국가들은 다시 한번 자국 원전이 안전한지 점검하게 되었고, 더 심한 환경에서도 안전하게 원전을 운영할 수 있는 요건들을 검토하고 있다. 우리도 일본 지진 사태 직후 정부와 모든 원자력 관련 기관 및 기업 종사자들이 비상대응체제를 가동해 원전 안전성을 점검했으며, 지진 이외의 예상치 못한 사고 상황이 있을 수 있는지도 세밀하게 검토하고 있다.
원자력이 위험하니까 원전을 짓지 말자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가장 안전한 것은 위험을 아는 것이다. 우리 주변의 환경호르몬 다이옥신 석면 등도 그 폐해가 방사능물질 못지 않지만,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일본은 제한 송전을 하고 있다. 일부 산업이 마비되고 모든 활동이 제약 받는 불편을 감내하고 있다. 전기 없는 쾌적한 자연은 미사여구에 불과하다. 아직까지는 원전만이 사회적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대안이다. 더욱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원전 건설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백춘선 한국전력기술㈜ 원자력기술그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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