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금융지주가 우리금융지주를 인수, 국내 최대 금융그룹을 만든다는 메가뱅크(초대형은행)구상은 곧 손에 잡히는 듯 했다. 금융계에선 “거대 국영은행을 만드는 것이지 어떻게 민영화인가”, “메가뱅크는 김석동(금융위원장)과 강만수(산은금융 회장)의 합작품”이란 비판이 쏟아졌지만, 금융위는 강행할 움직임이었고 산은금융의 인수는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좌초위기가 찾아 왔다. 야당과 금융 노조의 반발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고, 급기야는 여당에서조차 ‘반(反)메가뱅크’ ‘안티 강만수’기류가 확산되는 상황. 대형암초에 직면한 금융당국 역시 메가뱅크 구상을 다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반발
한나라당 일각에선 이미 메가뱅크에 대한 거부정서가 퍼져있는 상태. 야당처럼 내놓고 반대하지는 않고 있지만, 김영선ㆍ고승덕ㆍ김성식 의원 등 정무위원회와 기획재정위원호 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반발기류는 꽤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한나라당은 당론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저축은행 사태로 전 금융권이 시끄러운 와중에 실효성도 없고 논란만 일으키는 메가뱅크로 왜 긁어 부스럼만 만드나’는 분위기가 이미 팽배하고 있는 상황. 한 관계자는 “강만수 회장에 대한 당내 시각이 원래 좋지 않다. 강 회장이 기획재정부장관 시절 주도한 부자감세 고환율정책 등 때문에 지금 한나라당이 곤경에 처하게 됐다는 인식이 퍼져있는데, 이 번에도 또다시 분란만 일으킨다는 것이다”고 전했다.
메가뱅크를 위한 필수관문인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 개정도 난관을 맞았다. 금융지주가 다른 금융지주를 인수할 때 최소한 95% 이상을 인수해야 한다는 규정에 예외조항(50% 이상)을 둬 우리금융 민영화를 쉽게 하자는 취지인데, 이것이 산은금융에 특혜를 주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 물론 시행령개정은 국무회의 의결만으로 가능하지만, 국회가 전면 반대할 경우 정부가 강행하기는 힘든 실정이다. 더구나 정무위 소속 민주당 조영택 의원은 금융위가 시행령을 못 고치게 95% 제한 규정을 아예 법률에 담는 법안까지 발의하며 맞불을 놓은 상태다.
노조 반발
금융권 노조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우리은행 등 7개 회사의 노조가 참여한 우리금융지주 노동조합협의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관치에 의해 주도되는 메가뱅크 시도를 결단코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김문호 전국금융산업노조(한국노총) 위원장은 “22일 서울시청 앞에서 메가뱅크 반대를 위한 촛불집회를 열 계획”이라며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전국 금융 노동자 15만명이 참여하는 총파업 투쟁도 불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로선 청와대는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 입장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각에선 “강만수 회장이 (우리금융지주인수 계획을) 이미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누구를 밀고 도와주고 할 사안이 아니지 않는가”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야당과 노동계의 반발에 여당까지 비판적 정서가 나타나면서 금융위원회는 메가뱅크 구상 자체에 깊은 고민에 빠졌고, 청와대 역시 이 사안을 심각하게 들여다 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금융위 실무선에선 산은금융지주의 인수참여에 대해 찬반 양론이 있었고 김석동 위원장이 “참여자체를 막을 필요는 없다”는 태도를 견지해왔는데, 반발여론이 계속 거세질 경우 김 위원장도 자기 입장을 계속 고수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금융권의 한 고위인사는 “금융계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그것도 임기 말에 정부가 정치권과 노동계 반대를 무릅쓰고 대형 인수ㆍ합병을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일각에선 여론이 더 악화될 경우, 산은금융지주가 아예 인수전 참여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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