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트디즈니가 보여 준 달콤한 이야기는 환상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게 현실입니다.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작업은 고전 속에 정신분석학적인 얘기(재해석)를 집어넣어 현실을 드러내는 겁니다.”
1일 서울 서초동 국ㆍ공립예술단체연습동에 만난 베르니스 코피에테르(41) 모나코 몬테카를로발레단 수석무용수가 정의한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현대발레다. 그는 11월 국립발레단이 올리는 마이요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위해 조안무가로 방한했다. 180㎝의 큰 키와 긴 팔다리, 싹둑 자른 단발 머리인 그는 파란 눈이 마치 꿈꾸는 듯한 발레리나 겸 안무가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잔혹한 동화로 재해석한 ‘라 벨르(La belle)’를 비롯한 마이요의 현대발레에서 육감적으로 연기했던 그는 지난달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드라당스에서 여성무용수상을 받았다.
“실제 페로의 원작에서도 오로라 공주와 왕자는 서로 사랑해 숲속에서 아이들을 낳았지만 오랫동안 숨어 살아요. 왕자의 엄마가 식인종이기 때문이죠. 마이요의 공연에서 악의 요정 카라보스 캐릭터가 더 살아나는 이유이기도 해요.”
고전을 재해석한 마이요의 ‘신데렐라’에서도 신데렐라는 고전의 청순가련형이 아닌 능동적인 모습이었다. 이 작품에서 코피에테르는 신데렐라와 왕자 사이에서 이야기를 주도하는 요정 역할로 열연했다.
그는 이번에도 지고지순한 줄리엣이 아닌 야성을 간직한 줄리엣을 안무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흰 배경의 무대에 조명으로만 변화를 주는 극도로 단순한 무대와 정명훈씨가 지휘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연주도 기대를 모은다.
“무용은 심장을 갖고 진짜를 추는 것인데 클래식은 사실 진짜를 가린 채 척하는 면도 있어요. 요즘 젊은이들은 밖에서 담배도 피우고 여자 친구도 만나고 더 이상 움츠려서 살지 않죠. 부모님에게 자기 생각을 직접 얘기하고 집도 나가고 뭐든 자기 뜻대로 하잖아요. 순종적이고 복종적이지 않은, 진짜 줄리엣을 기대해 주세요.”
21세에 마이요를 만나 ‘라 벨르’ 이후로 단발을 유지해 온 코피에테르는 “나도 가끔은 긴 생머리를 날리는 꿈을 꾼다”고 털어놨다. 또 ‘마이요 작품 속 로미오와 줄리엣은 배다른 오누이 관계 아닌가’라는 질문에 “만나자 마자 ‘아 저 사람이구나’라고 느끼는 영혼의 친구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청환 기자 chk@hk.co.kr
사진=신상순기자 s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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