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의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 포기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의약 갈등'에 불을 지필 조짐이다. 의사들과 약사들은 2000년 '의약분업' 때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었다. 의약계에선 이번 사안이 '제2의 의약전쟁'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정부부처가 특정 이익단체에 치우쳐 정책 결정한 탓에 갈등을 조장하게 된 셈이다.
회원수가 10만명에 달하는 대한의사협회가 '궐기대회'까지 거론하며 격앙된 근본적인 이유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복지부의 정책결정 과정에서 약사회에 밀렸다는 불쾌감이다.
그간 의협은 '1차의료 활성화 방안' 등 복지부의 의료정책에 거세게 반대해왔다. 복지부는 동네의원을 만성질환자와 노인에 대한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건강관리체계로 구축하는 이른바 '선택의원제'를 추진해왔다. 그러나 의협은 "일정교육을 통해 관련 전문과목 이외의 과에서도 진료받게 할 경우 현행 전문의제도를 무너뜨릴 우려가 있다"며 반대해왔다.
의협의 한 관계자는 "(의협의 주장은 등한시한 복지부가) 일반약 약국 외 판매와 관련해서는 약사회의 입장을 들먹이며 그들의 뜻에 따라 정책을 선회한 것 아니냐"며 "이에 대한 불쾌감이 있다"고 전했다.
복지부의 의약품 재분류 논의 방침도 또다른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 상비약 중 일부를 약국 외에서도 팔 수 있는 의약외품에 포함시키는 방안 외에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의 분류 문제를 둘러싸고 양측이 격하게 대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약사회는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전문의약품 중 안전성이 검증된 일부는 일반의약품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해왔다. 의협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다. 여기에다 '전국의사총연합' 등 일부 단체는 일반약의 슈퍼판매를 찬성하면서 환자가 의원이나 약국 중 원하는 곳에서 약을 탈 수 있게 하는 '국민조제선택제' 도입까지 요구해왔다.
약사회 간부를 지낸 한 인사는 "의약분업 이후 의사들 사이에선 '약(조제권)을 빼앗겼다'는 피해의식이 있었다"며 "일반약 슈퍼판매 무산을 이유로 의협이 자신들에 불리했던 의약정책을 되돌리는 계기로 삼으려는 듯하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국민청원운동으로 방향을 돌렸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김태현 사회정책국장은 "주무부처인 복지부가 '상비약 약국 외 판매'를 추진할 의지가 없다는 게 확인됐다"며 "각 지방자치단체 내에서 상비약을 팔 수 있는 특수장소를 확대하는 주민청원운동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병ㆍ의원이나 약국이 별로 없는 지역에서는 진통제, 소화제, 지사제 등 10여 종의 상비약을 약국이 아닌 곳(특수장소)에서도 팔 수 있게 돼있다. 관할 보건소장이 지정한 약사가 판매를 관리하는 방식이다.
김 국장은 "각 지역별로 주민들의 서명을 받아 해당 지자체에 특수장소를 넓혀달라는 주민청원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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