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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양지로 나온 사내 하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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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양지로 나온 사내 하도급

입력
2011.06.0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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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내 하도급에 관한 잇따른 대법원 판결이 사회적 관심과 법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원청 회사로부터 부당한 차별이나 지시를 받으면서도 노동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던 사내 하도급 근로자들의 현실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내 하도급을 이미 40년 넘게 활용하여 왔고, 그것이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생각하던 사측으로서는 어느 날 갑자기 사내 하도급 제도가 마치 불법적인 것처럼 취급 받는 것을 보고 매우 황당했을 것이다.

이런 차에 1월 노사정위원회가 사내 하도급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하자, 그 결과에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마침내 지난달 27일 노사정위원회가 공익위원의 가이드라인 초안을 공개했다. 그런데 그 내용이 기존의 노동법령을 재확인하거나, 원ㆍ하청 사업주들에게 '노력'을 촉구하는 정도에 그치다 보니"별 실효성이 없다"는 노측의 비판과 "엄연한 도급관계에 왜 노동법적 개입이 이루어져야 하는가" 라는 사측의 반론에 직면하게 되었다. 하지만 노사정위원회는 원래 법을 만드는 곳이 아니다. 또한 권고에 불과한 가이드라인이라 할지라도 노동 현장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독일과 일본의 선례를 감안해 본다면, 이런 비판이 조금 억울한 측면도 있다.

회색지대 걸친 가이드라인

사실 이번 가이드라인의 관전 포인트는 따로 있다. 종래 사내 하도급에 관한 전통적인 문제해결 방식은, 그것을 놓고 '순수한 근로관계' 또는 '순수한 도급관계' 둘 중 어느 하나로만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사내 하도급은 대개 근로관계적 요소와 도급적 요소가 뒤섞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하나로만 판단해야 하다 보니,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가와 상관없이 늘 논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마치 하얀 바탕에 검은 색 점이 여러 개 찍혀 있는 종이를 두고, 흰색인지 검정색인지 어느 하나로 만 대답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이런 경우에는 차라리 회색이라고 답하는 것이 옳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사내 하도급을 가능한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회색 지대'에서 요구되는 보호 내용을 제안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가이드라인의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문제해결의 접근방식이 새롭고, 그래서 눈에 띈다. 하지만 정작 이런 점에서 아쉬움도 남는다. 사내 하도급에 대한 나름대로의 정의가 내려져 있지만, 개념을 갈무리하기에는 너무 포괄적이다. 제법 심각한 흠이다. 왜냐하면 자칫 다른 사업장 내에 들어가 업무를 수행하기만 하면, 순수한 도급관계인데도 불구하고 노동법령을 준수하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 실질이 근로관계여서 마땅히 불법파견으로 평가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이드라인만 준수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노사정위원회의 가이드라인이 과도한 국가 개입이나 불법 파견을 정당화하는 면죄부가 되고 만다.

미래지향적 한국형 모델을

최종 가이드라인에서는 사내 하도급 근로자에 대한 보호 내용뿐만 아니라, 노사정 모두가 공감하는'한국형 사내 하도급'의 정형화한 모습을 모델로서 보여주었으면 한다. 그래야만 그 모델을 기준으로 잘못되었거나, 잘못된 것으로 오해 받을 수 있는 기존의 사내 하도급 관행들을 원ㆍ 하청업체 스스로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과거보다는 미래를 지향하는 가이드라인이 옳다.

사내 하도급은 대한민국의 선진화 과정에서 어차피 한번쯤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이번에 노사정위원회가 그 문제를 음지에서 양지로 꺼내놓았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둔 셈이다. 기왕에 손을 댄 이상 본질적인 해법을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으로만 볼 수 없다. 그만큼 최종 가이드라인에 거는 기대 또한 사뭇 크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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