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학년도 수능시험이 2일 실시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모의고사 수준으로 출제된다면, 실수로 단 한 문제만 틀려도 그 학생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실수도 실력이라면 할말이 없지만 억울하고 불안한 일이다. 시험의 가장 큰 목적인 변별성도 문제다. 이번 모의고사에서 외국어 고는 말할 것도 없고, 서울 강남 어느 고교의 경우 외국어영역(영어) 만점자가 한 반에서 20명이나 나왔다.
이 같은 점수 인플레이션은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수능 만점자가 1%이상 나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수능을 쉽게 출제해 수험생의 시험 부담과 사교육비를 줄인다는 것이다. 그 방법의 하나로 지난해와 달리 교육방송(EBS)교재에 실린 문제를 그대로 출제했다. 굳이 학원에 다니지 않고 EBS 강의와 교재만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는 메시지이다.
그러나'물 수능'예상이 주는 부작용은 한 둘이 아니다. 학교에서는 아예 EBS 교재가 교과서를 대신하고, 변별성에 불안을 느낀 상위권 수험생들은 당락을 좌우할 논술시험에 매달리고 있다. 서울 강남의 일부 유명 논술학원은 수강생이 지난해보다 50%나 늘었다고 한다. 쉬운 수능출제 방침이 정부가 억제하려는 논술 사교육을 오히려 조장하는 꼴이다.
연계성 높이기에만 집착해 EBS 교재의 문제를 그대로 출제하는 것은 응용력과 창의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 많은 문제를 모두 외우도록 만들어 수험생들에게 또 다른 부담을 준다. 무더기 동점자로 인해 일선학교의 진학지도도 어렵게 된다. 또 실수로 수능 최저기준에 미치지 못하거나, 목표 대학에 합격하지 못한 수험생을 재수의 길로 내몬다. 실제로 수능이 쉬운 해마다 재수생은 늘어났다.
물론 수능이 대학입시의 전부는 아니다. 대학들도 점점 다양한 전형요소를 도입해 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입시의 중심은 여전히 수능인 만큼 공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변별성을 상실한 쉬운 출제는 능사가 아니며, 해마다 난이도가 갈팡질팡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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