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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마음속의 길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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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마음속의 길을 잃다

입력
2011.06.06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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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함월산 기림사에서 포항 운제산 오어사까지 이어지는 아름다운 산길이 있었습니다. 십수 년 전에 그 길을 처음 걸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땐 그 길은 비포장의 전형적인 우리네 산길이었습니다. 발이 편해 몸 또한 편한 길이었습니다. 바람 따라 굽이굽이 돌아가는 아름다운 산길이었습니다. 그 산길에서 만난 약초꾼에게서 그곳을 영월(迎月)재라 부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기림사가 자리잡은 곳이 달을 품는 함월산(含月山)이니 달을 맞이하는 영월재가 있는 것이 산과 산고개가 마치 정다운 오누이 같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그 길을 걸어 보았습니다. 그 사이 길은 포장이 되었다가 부서져 다시 낡아 가고 있었습니다. 숨어 있던 길에 이정표가 걸리고 14번 국도라는 이름표도 달고 있었습니다. 크고 작은 차량들이 이어져 달리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빠른 길이 되었지만 더 이상 옛 산길이 아니었습니다. 달을 맞이하는 영월재 곳곳에는 거대한 철탑들이 줄줄이 박혀 월성원자력에서 만든 전기를 철강도시 포항으로 보내고 있었습니다. 곳곳에 정체불명의 공장들까지 들어서 아무리 옛 모습을 찾으려 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마음속의 길 하나를 몽땅 잃어버렸습니다. 노산 선생의 노래 ‘산천의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고’만 되풀이하다 돌아왔습니다. 발이 아파 마음까지 아픈 몸을 끌고 되돌아왔습니다.

시인ㆍ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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