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를 사실상 포기하고 대한약사회가 제시한 안대로 하기로 해 "이익단체가 정부정책을 결정하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복지부는 그간 현행 약사법 테두리 안에서도 일반의약품 판매가 가능한 '제한적 특수장소'를 확대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해 왔다. 장관 고시를 통해 특수장소의 범위를 넓혀 제한된 시간에 제한된 의약품만 팔도록 하려는 계획이었다. 이를 놓고도 시민단체들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라며 강하게 반대했으나, 결국 복지부는 이마저도 약사회의 반대에 막혀 꼬리를 내렸다.
복지부는 3일 "그간 검토해 온 특수장소 지정 확대 방안은 일선 약국의 약사가 대리인을 지정해야 하는데 약사회가 이를 수용하지 않아 실효성 있는 방안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사실상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 추진 중단을 선언했다.
대신 이날 복지부가 내놓은 카드는 의약품 재분류 논의다. 복지부는 "국민의 의약품 구입 불편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중앙약사심의위원회를 열어 현행 의약품 분류 체계를 본격적으로 재검토하겠다"며 "이달 중순 첫 회의를 열겠다"고 밝혔다.
현재 일반의약품인 해열ㆍ진통ㆍ소염제 등 상비약 일부를 약국 외의 장소에서도 팔 수 있는 의약외품으로 재분류하겠다는 복안이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의약품 재분류와 관련해 약사회는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전문의약품을 줄이고 일반의약품을 늘리기를 원해 왔던 터다. 이는 의사단체의 이해관계와도 맞물리는 민감한 사안이다. 총 12명의 위원 중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 대표와 약사회 등 약사 대표가 각각 4명으로 3분의 1씩을 차지하고 있어 중앙약사심의위에서 타협안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복지부 내에서조차 "여러 사안이 맞물려 있어 논의가 어느 정도까지 얼마 동안 이어질지 예측하지 못한다"며 "2000년 의약분업 논쟁의 수준까지도 갈 수 있을 정도로 민감한 문제"라는 걱정이 터져 나온다.
그러면서 이날 복지부는 약사회가 지난달 31일 복지부에 전달한 대안인 당번약국을 현행 60여곳에서 4,000곳(평일기준)으로 확대하는 안을 거론하며 "이에 대한 이행여부를 점검하는 시스템을 갖추도록 약사회에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이익단체의 입김에, 추진하던 정책까지 그만 두고 되레 협조를 부탁하는 꼴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날 입장문을 내어 "복지부가 약사회의 눈치 보기에 급급해 빈 껍데기에 불과한 발표를 했다"며 "국민을 위한 복지부가 아니라 '약사복지부'를 자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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