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등록금 논란이 차등지원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처음보다 현실성 있어 다행이지만 더욱 구체적인 대안 검토가 필요하다. 학생들 주장처럼 우리나라 대학등록금은 비슷한 소득 수준의 국가에 비해 높은 것이 사실이다. 실제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의 학생들은 등록금을 납부하지 않으며, 프랑스나 독일, 이탈리아 등은 우리보다 훨씬 낮다. 한편 일본의 사립대학 등록금은 우리보다 높고, 미국 대학의 등록금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우리의 두 배가 넘는다. 이렇게 등록금이 나라마다 다른 것은 각 대학 재정수요의 절대적 규모가 다르고 재정조달 방법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외국과의 단순 비교는 비현실적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대학교육의 재정수요 자체가 적기 때문에 등록금 수준이 낮은 게 아니다. 오히려 대학재정을 국가책임의 원칙에 따라 정부가 조달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부담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주립대, 사립대에 따라 재원조달 방법에 차이가 있는데, 사립대의 경우 시장원리에 따라 등록금과 민간기부금을 통해 재원을 조달한다. 명문 사립대 등록금은 아주 높은 대신 장학금제도가 잘 구비되어 우수한 학생이 가정형편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한다. 이렇게 나라마다 다른 정책적 원칙을 고려하면 등록금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단순한 국제비교보다 우리 현실에 맞는 대안 검토가 필요하다.
한국은 정부 재정수요의 급격한 증가를 유발하지 않으면서도 단기간에 고등교육을 확대시키기 위해 학생들이 납부하는 등록금에 의존하는 재정구조를 만들었다. 가정의 대학교육 투자는 다른 어떠한 투자보다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학부모들은 기꺼이 등록금을 납부했다. 식지 않는 교육열에 힘입어 지난 60년간 수많은 대학이 다투어 설립되었고, 대학 진학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런 양적 확대를 통한 발전은 한계에 다다랐다. 대졸자들은 취업난에 고생하고 있는 반면, 외국 학문의 수입에 안주했던 대학은 세계적 수준의 연구나 교육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의 연구와 교육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국가재정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한다. 미래는 지식경제사회라는 점을 감안할 때 대학에 대한 투자는 한국이 선진경제로 안착하는 데도 꼭 필요하다. 따라서 대학의 질적 발전을 위해서는 등록금 인하를 넘어 폭넓은 차원에서 대학교육에 대한 국가재정의 역할이 논의되어야 하며 정당한 원칙이 필요하다.
우선 수월성의 원칙이다. 등록금 논의도 이러한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지금 논의되는 것처럼 가정 형편에 따라 차등 지원한다는 것은 행정적으로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교육적 원칙도 뚜렷하지 않다. 오히려 대학에 직접 재정을 지원하여 등록금을 인상하지 않으면서 장학금을 확대하도록 하면 학생의 부담을 낮출 수 있다. 대학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도록 교육과 연구의 수월성을 기반으로 각 대학에 차등 지원해야 한다.
수월성·공공성·평생교육 감안을
한편 세계적 연구중심 대학의 근간이 되는 우수 대학원생들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 이 경우에도 수월성 원칙에 따라 지원하되, 대학원생은 연구직이라는 관점에서 학비뿐만 아니라 생활비도 지원해야 한다.
다음은 연구의 공공성 원칙이다. 대학의 연구는 국가경제와 사회문화적 발전을 위한 것으로 그 결과를 소수 개인이 독점하기보다 사회에 환원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정부 재정지원에 의한 연구는 반드시 공공성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
평생교육의 원칙도 빠뜨릴 수 없다. 대학은 국민이 평생동안 삶의 필요에 따라 입학하고 수학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대학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평생교육체제로 혁신하는 대학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평생교육을 통해 고령인구가 국가경제에 지속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국가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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