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위 활동이 따로 없다. 아이돌 그룹 티아라의 멤버로 인기를 모으더니, TV드라마 '드림하이'에 출연해 눈길을 사로 잡았다.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에도 얼굴을 비치더니 스크린에까지 진출했다. 9일 개봉하는 '화이트: 저주 받은 멜로디'(감독 김곡ㆍ김선)의 주연 함은정(23)은 아이돌 그룹의 끝 모를 활동 반경을 보여준다.
'화이트'는 아이돌 그룹의 어두운 이면을 파고드는 공포영화다. 그룹의 얼굴이 되고 싶어하는 멤버들 사이의 과도한 갈등, "아이돌은 파업을 못해"라고 외치며 폭력도 예사로 행사하는 매니지먼트 대표의 억압적 태도, 스폰서에 대한 성 상납 등을 직설화법으로 전한다. 스타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원혼이 된 정체불명의 존재가 연예산업의 악다구니들 사이에 끼어들며 서늘한 느낌을 더한다. 잘 나가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를 캐스팅하고 공포영화라는 장르를 빌려 아이돌 현상을 냉소적으로 그려내는 이색영화다.
함은정은 "아이돌이 아이돌을 비판하는 영화에 출연한다는 점이 아이러니한 재미를 주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그의 답변은 당당하고 발랄하고 거침 없었다.
그는 "영화처럼 멤버들 사이에 과도한 경쟁의식은 없다"고 말했다. "다른 친구보다 더 예쁜 옷 입고 싶고, 예뻐지고 싶은 은근한 신경전은 있어도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 "영화 속에 묘사된 부정적인 측면도 굉장히 과장됐다. 연예계도 다 사람 사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그는 "제대로 못 자고 못 먹는 것은 여전히 힘들다. 최근 1주일 사이 가장 많이 잔 날이 4시간 수면을 취한 정도"라고 했다.
함은정은 연예계 활동 기간만 따지면 중견이다. 1995년 드라마 '신세대보고서 어른들은 몰라요'로 카메라 앞에 처음 섰으니 만 16년을 배우와 가수로 살아온 셈. "처음엔 부모님의 권유로 연기를 시작했고, 너무나 재미가 있어 연기를 업으로 삼고 싶었던" 아역배우는 아이돌 그룹을 발판 삼아 성인 연기자로 도약했다.
"날 표현할 수 있어 연기가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대학(동국대 연극학부)도 연기 전공을 하게 됐죠. 노래와 춤도 좋아하는데 티아라 활동 기회가 왔어요. 3,4년을 티아라 멤버로 지내며 불안하기도 했어요. 연기를 못하게 될까 봐. 저도 연습생 때 '아이돌은 정말 할 것 없을 때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편견이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직업보다 힘든 아이돌 그룹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세상과 단절돼 살아와 연기하는데 불리한 점이 많겠다"고 도발적으로 묻자 그는 "이 질문 너무 재미있네요"라며 여유를 부렸다. "어렸을 땐 그런 점 때문에 고민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엄마에게 '대본에 사랑이 자꾸 나오는데 이런 감정 느껴본 적 없으니 나 한 번 (사랑)해보면 안 돼요'라며 떼를 쓴 적도 있어요." 그는 "간접경험을 최대한 많이 하려고 책도 많이 찾아 읽고 영화도 많이 봤다"고 밝혔다. "지금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 하나하나도 될 수 있는 한 많이 기억하려 한다"고도 했다.
간접경험에 대한 욕심 때문일까. 그는 그 나이답지 않게 "홍상수 김기덕 장진 감독님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홍상수 감독의 '극장전'은 열아홉 살 때 다섯 번 봤다. 여백을 주는 연출이 감정을 더 부풀어오르게 하는 영화"라는 짤막한 평까지 했다. "홍상수 감독이 출연 제안을 하면 적극적으로 하고 싶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사마리아'와 '나쁜 남자'를 좋아하지만 그 분 영화에 출연하는 것은 (무서워서)망설여진다"고도 밝혔다.
"잘 되고 싶은 마음 뿐"이라는 이 욕심 많고 자신만만한 아이돌은 "배우로서 다양한 역할을 연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거친 역할도 해보고 싶고, 아주 어둡거나, 정신 없이 발랄한 역할도 욕심이 난다. 액션도 좋다"고 했다. 액션? "초등학교 6학년 때 '미녀 삼총사' 보고 너무 멋져 보여서 태권도 도장 찾아갔어요. 저 3단이에요."
연기 욕심을 이리저리 풀어내면서도 "연기와 티아라 활동 둘 중에 하나를 택한다면"이라 묻자 주저하지 않고 "티아라 활동이 우선"이라고 답했다. "티아라의 은정으로 제가 대중에게 알려졌고, 저의 뿌리는 티아라라고 생각하니까요."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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