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수 GS그룹 회장이'재계의 대통령'이라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에 취임한 지 4일로 100일이 된다.
2월 24일 33대 전경련 회장에 오른 허 회장은 1999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이후 12년 만에 탄생한 10대 그룹 오너 회장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조석래 전 회장이 지난해 7월 건강을 이유로 사의를 표명한 이후 7개월 가까이 공석이었던 데다, 29~32대까지 회장을 재계 20위권 밖의 회장들이 맡으면서 재계 대표 단체로서 전경련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이나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이 수장을 맡았을 당시 당당했던 전경련의 위상을 그가 회복시켜줄 것이란 기대가 흘러나온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취임 100일이 지난 지금, 허 회장에 대해 물음표를 달고 있다. 지난 100일 동안 재계 대표로서 그가 눈에 띄게 한 일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 동안 그가 참석한 대외 행사는 지난달 열린 ▦대통령-경제5단체장 간담회(청와대) ▦한불 최고경영자 클럽회의(프랑스) ▦한중일 비즈니스 포럼(일본) 등이 있다.
전경련은 허 회장이 두 차례 회장단 회의를 주재하고 대통령 해외 순방 등에 동행하면서 전경련 회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밝혔다. 허 회장은 또 매주 1회 꼴로 전경련에 들러 임직원과 '한국경제 비전2030(GDP 5조달러ㆍ국민소득 10만달러ㆍ세계 10대 경제강국)'이라는 중장기 비전을 만드는 작업을 진두지휘했다고 전경련은 설명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정작 중요한 이슈에 대해서는 허 회장이 구체적인 행동이나 발언을 하지 않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제기한 초과이익공유제라든가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언급한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 강화,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등 재계를 뒤흔들 만한 이슈들이 터졌지만 허 회장은 침묵을 지켰다. "기업이 잘되게 하는 기본 원칙을 지켜나가겠다는 대통령의 언급에 감사와 지지를 표명한다"는 정도의 허 회장 발언이 소개됐을 뿐이다. 오히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 직설적으로 발언했고, "재계를 대표한 발언"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기업 프렌들리'를 내세우며 친기업 성향을 강조하던 이명박 정부가 통신료, 기름값 인하 등 대기업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는데도 허 회장은 그 기세에 움츠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전경련이나 GS그룹 측은 허 회장이 '재계의 신사'라는 별명처럼 부드럽고 내실을 중시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당장 눈에 보이는 게 없더라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분명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허 회장 취임으로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전경련 회장단 회의가 전임 회장 때와 마찬가지로 주요 그룹 총수들의 외면 속에 맥 빠지게 치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허 회장 취임 이후 처음 열린 3월 회장단 회의 때만 해도 구본무 LG 회장을 제외한 당시 4대 그룹 총수가 모두 참석, '전경련이 뭔가 달라지는구나'라는 기대감을 줬지만, 5월 회장단 회의 때는 4대 그룹 총수가 모두 빠졌다. 전경련 회원사의 한 관계자는 "오랜만에 '힘있는' 전경련 회장이 탄생하나 싶어 기대를 했지만 취임 100일이 될 때까지 이렇다 할 존재감이 없어 실망스럽다"며"앞으로라도 재계를 대표하는 단체로서의 전경련의 위상을 세워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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