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나라 틀이 잡혔다고 생각했다. 폐허에서 일어나 단 반세기만에 경이로운 산업화를 달성하고, 억압체제를 해체해 어느 정치선진국과도 비견할 만한 민주화도 이뤘다. 도도한 문화한류의 흐름에서 보듯 거의 모든 분야에서 자부심을 갖게 됐다. 갈등과 대립이 유난하긴 하지만 이는 너무 빠른 질주과정의 부산물 정도였다. 속도 조절과 숨 고르기를 통해 차차 나아질 게 분명했다. 어쨌든 나라의 기본 틀은 단단하게 갖춰졌으니까 크게 걱정할 일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아니었다. 우리의 허약하고 위태로운 실체를 까 보인 부산저축은행 사태는 그 동안의 낙관과 자부가 허상에 근거한 중대한 착각이었음을 잔인하게 일깨워주었다. 국가사회의 기본 틀과 기능이 어느 한 군데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책임 있는 어느 누구도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게 이 사건의 핵심이다. 선진국은커녕 그냥 보통 수준의 나라라고 하기도 어렵다.
국가기능의 총체적 작동 불능
부산저축은행의 대주주 경영진은 자본잠식으로 회사가 껍데기만 남은 상황에서도 분식회계를 통해 300억 원이 넘는 배당금을 나눠먹고, 5조원 가까운 고객예금을 대출로 빼내 개인 치부에 유용했다. 기업인으로서 최소한의 양식 따위를 말하기도 민망하지만, 그래도 직접 피해당사자가 아니라면 여기까지는 악덕기업주들의 흔한 행태로 혀만 차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알다시피 사태를 키운 건 영업정지 직전 소수의 VIP고객들을 위해 몰래 거액을 인출, 손해를 면하게 해준 대목이었다. 현장에는 금감원 직원들도 있었다. 수십만 서민 예금주들을 다 내팽개친 채 돈 많고 힘 있는 고객만 챙긴 행위에 민심이 폭발했다. 결정적으로 국민감정을 건드린 건 불법보다 그들끼리만의 불공정행태였다.
이후 상시 감독과 감사로 회사의 정상운영을 유도하고 서민 예금주들을 보호해야 할 금감원, 감사원이 도리어 그들과 함께 놀아난 정황이 줄줄이 드러났다. 금감원 출신 관료들은 감사자리를 차고 앉아 바람막이 역할로 전관예우에 상응한 보답을 했고, 실세 감사위원 등은 저축은행 측의 청탁을 집안 일 처리와 금품으로 맞바꿔 제 기관의 감사를 가로막았다. 별 하는 일없이 유력인사들과의 교류를 업으로 잇속을 챙기는 브로커도 어김없이 등장, 서로 필요한 이들끼리 끈끈하게 엮었다.
책임공방이 벌어지면서 지도급 정치인에다 청와대 핵심들을 포함한 고위관료까지, 이런저런 인연으로 얽혀 거론되는 이들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고 있다. 이 지경이라면 동네 큰 계모임 수준에 불과했던 상호신용금고를 준(準)은행급의 저축은행으로 만들어 특혜와 땜질로 키운 과거 정책과정 또한 투명하게 이뤄졌을 리 없다고 보는 게 상식이다. 어느 정치인이나 관료가 아무 이득 없이 그런 위험부담이 큰 일을 맡고 나섰겠는가.
저축은 사태 본질은 기득권구조
이처럼 국가 기능을 총체적으로 불능상태에 빠트린 근본원인은 완강한 기득권 구조다. 부산저축은행 사태를 다른 어떤 사건보다 무겁게 봐야 하는 이유가 지연, 학연, 돈과 권력, 전관예우 관행 등으로 얽힌 기득권 구조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양극화만 문제가 아니다. 일반 국민의 손과 인식이 미치지 않는 곳에 법과 원칙을 넘어선 그들만의 리그가 엄존하는 이 구조가 더 심각하다. 더구나 그들이 자의적으로 소비하는 돈과 권력이 따지고 보면 모두 일반 국민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 구조를 해체하지 않는 한 공정사회는 물론이거니와 국가통합, 나아가 정상적인 시장자본주의 작동마저 불가능하게 된다.
뒤늦게 정부가 강도 높은 감사와 개선의지를 밝혔으나 도리어 부아만 돋군다. 모두가 한통속으로 드러난 마당에 누구에게 맡겨 어떤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인가. 급기야 감사원도 감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럼 이 감사자는 또 누가 감사하나. 지금 봐선 아예 대한민국 전체를 감사해야 할 판이다. 나라 틀을 다시 세우는 특단의 각오가 아니고는 박탈감에 빠진 민심의 분노를 수습할 방도가 없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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