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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뒤로 달리자

입력
2011.06.01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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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로 오묘한 포즈였다. 다리는 번갈아 가며 뒤쪽으로 퍽퍽, 팔은 부자연스럽게 움찔움찔, 머리는 옆으로 돌려져 끄덕끄덕. 뛰긴 하는데 등이 멀어지기는커녕 자꾸 필자에게 성큼성큼 다가온다. 5년 전 거꾸로 달리는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그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 괴기 영화에서 귀신이 조화를 부리는 장면 같기도 하고, SF 영화에서 인조인간이 고장 난 채 역주행하는 장면 같기도 했다.

그렇게 괴상망측한 자세로 달리던 주인공에게 눈길이 가지 않는 다면 거짓말. 그래서 눈에 온 힘을 모아 자세히 봤는데 이건 또 충격이다. 얼굴은 분명 노인인데 몸은 완전히 근육질 터미네이터. 봄비 오신 다음 날 맑게 개여 햇살이 뽀얗게 쏟아지는 우면산 산책로를 그는 그렇게 도처에 충격을 날리며 거꾸로 달리고 있었다.

기자 정신을 발휘해 취재에 들어갔다. "왜 뒤로 뛰세요." "아, 내가 완전히 조깅에 미친 사람인데 오래 하니까 무릎이 나가 버렸어. 뛰고 싶은데 못 뛰니 환장하겠더라고. 그런데 누구에게 듣고 뒤로 뛰어 보니까 무릎이 괜찮아. 나도 엄청 신기했지."

그래서 아는 체육학과 교수와 만났을 때 확인해 보니 그의 말은 100% 사실이었다. 뒤로 달리면 무릎 관절보다 넓적다리와 장딴지 근육을 많이 써 무릎이 망가진 사람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또 평소 쓰지 않는 근육을 사용하게 돼 몸의 균형이 좋아지고 거꾸로 보기 때문에 눈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더 입맛 당기는 것은 뒤로 달리기가 칼로리를 더 많이 태워 버린다는 점이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스텔렌보쉬대 연구진이 6주일간 성인 여성을 대상으로 일부는 고전적 방법인 앞으로 달리기만, 일부는 3주일은 앞으로 달리기를 하고 나머지 3주일은 뒤로 달리기를 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뒤로 달리기를 병행한 여성들이 앞으로 달리기만 한 여성들보다 체지방 감소량이 20% 많았다. 그래서 우면산 노인이 그처럼 멋진 몸매의 소유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뒤로 달리기는 이런 매력 때문에 몇 년 사이 한국인을 포함해 전 세계인이 즐기는 운동이 됐다. 2010년 8월에는 영국 맨체스터에서 1회 뒤로달리기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대회에선 4시간16분 만에 풀코스를 완주한 칼 투메이가 1등을 차지했다.

여기서 더 중요한 정보 하나. 바로 뒤로 달리기가 정신 건강을 윤택하게 하는 도구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세상은 모두 앞으로만 간다. 뒤로 가면 바보가 된다.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달려 얻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행복이 아니다. 특히 한국은 그저 잘살겠다는 목표 하나로 뛰고 또 뛰어 선진국이 됐지만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다. 삶이 황폐해진 것이다. 그러나 뒤로 달리다 보면 뒤의 것들을 챙기게 된다. 우리가 잃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필자에게 가장 먼저 뒤로 달리기의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 그 노인과 얼마 전 우면산에서 다시 마주쳤다. 아직도 그 운동을 하다 다시 필자에게 들킨 것. "자꾸 뒤로 가다 보니 행복의 궁극에 닿는 느낌이야. 도를 닦는 거나 마찬가지지." 그에게서 어떤 분야의 고수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진정한 포스가 확 뿜어져 나왔다.

이은호 문화부장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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